박 철 목사(좁은길교회, 부산환경운동연합 대표)
한 저널리스트가 어느 날 스승에게 현대 세계를 특징짓는 한 가지를 말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스승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날마다 우주에 대해서는 점점 많이 알아 가고 스스로에 대해서는 점점 몰라 갑니다” 육신의 질병은 무거울수록 아픔으로 자각됩니다. 그러나 정신의 질병은 무거울수록 자각되질 않습니다. 스스로 광신자임을 자처하는 광신자는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인간보다 더 비참한 것은 양심이 무디어진 인간입니다. 치열한 자기 응시없이는 ‘나의 확인’은 요원하다는 평범한 사리를 새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높은 열에 시달리는 환자가 체온계를 꺼버리는 짓은 어리석습니다. 체온계의 눈금이 높은 열을 가리키지 않는다고 환자를 괴롭히는 높은 열이 저절로 가셔질 턱은 없습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높은 열을 어리석은 수작으로 눈가림하는 작태는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을 부딪칠 때마다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할 궁리만 해오던 버릇을 우리는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 치열한 부딪침은 ‘나의 확인’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확인’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스스로 캐물어야 합니다. 또한 나는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거듭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스스로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도 그렇고, 집안에서도 그렇고, 일터에서도 그렇습니다.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 마주치는 삼간(三間)의 접점에 왜 내가 존재하는가를 끊임없이 묻지 않고서는, 나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편리한 것, 풍요로운 것, 과소비 풍조를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만, 진실로 이 사회에 흉년이 든 것은 자기 말,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입니다. 자녀로서의 책임, 아버지로서의 책임, 윗사람으로서의 책임,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생명을 받은 한 사람으로서의 책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 이 ‘책임’만은 깊이 깨우치고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6장에서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시작하면서 열 두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했을 때, 제자들은 저마다 이구동성으로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를 배반한 유다도 나서서 “선생님, 저는 아니겠지요?” 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것은 너의 말이다.”입니다. 세상에는 양심만 집어던지면 벗어날 수 있는 압제를, 양심하나 지키고자 끝내 박해를 감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양심이란 손끝의 가시입니다. 빼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이범선 씨의 어떤 소설에서 양심은 이렇게 비유되고 있습니다.
한 신앙인이 남 보기에 착실하고 열심히 살 뿐만 아니라 한 삶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음을 자타가 공인하는 경우에도, 실제로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을 때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스스로 참된 그리스도교의 신앙인이 되기까지는, 자신이 그때가지 아직 그리스도교의 신자가 아니었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예배당에 나와 앉아 있다고 해서 참된 그리스도교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주기도문을 외우고, 사도신경을 달달 외운다고 해서 참된 신앙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생명을 받은 한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기의 말에 대해서, 자기의 행실에 대해서, 자기의 소명에 대해서 책임질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신앙인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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