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덕 목사(샘터교회, 샘터교육문화원장)
‘말이 곧 그 자신이다’라는 말이 있다. 말은 단순하게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품과 인격, 가치관, 그리고 본성이 집약되어서 나오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옳은 표현이다. 따라서 한마디 말도 신중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 일각에서 폭력에 가까운 말들이 난무하고 급기야 사회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지 않은가.
최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국가의 재난대응능력과 위기관리 능력, 유명무실한 재난구조시스템, 정부감독기관과 기업의 유착, 기레기(기자+쓰레기)를 탄생시킨 언론 등 우리 정부와 사회의 모순이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여객선은 침몰했으나 그 대신 사회의 구조적·조직적 문제는 물론 개인적인 문제들까지 낱낱이 표출되고 말았다. 개인적인 문제란 상황과 관계의 맥락을 무시한 채 마구 쏟아내는 한없이 ‘가벼운 말’ 때문에 연일 충격과 혼란을 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사고 직후 실종자가족을 영혼 없이 방문한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이들을 향해 ‘미개한 국민’이라고 폄훼한 한 정치인 아들의 말, 아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두둔하는 그의 어머니, 그리고 정치인들의 실언과 청와대 대변인의 경박한 발언들이 공분을 일으켰다. 이런 말들이 희생자 가족은 물론 국민을 충격과 비탄으로 몰아넣었다. 어디 그뿐인가. 한기총 부회장이라는 이는 회의석상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의 사과 눈물을 보고 눈물을 흐리지 않는 국민은 백정’이라는 망언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군소교단 신학교에서 속성으로 목사가 되었다고는 하나 그의 몰지각한 발언은 희생자가 가족과 국민에게 비수를 꽂았다. 그의 말로 인해 기독교가 싸잡아서 욕을 먹고 있는 실정이다.
경박하고 무책임한 말이 판치는 세상을 향해「명심보감」은 이렇게 경고한다.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의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이다.’ 성서의 잠언에는 ‘말을 조심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지만 입을 함부로 여는 사람은 자신을 파멸시킨다(13:3).’ 또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이 있지만 정말 귀한 보배는 지각 있게 말하는 입이다(20:15).’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성서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말한다(잠언18:21).
최근에 나온 인문고전에서 배우는「말공부」(조윤제 지음)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의 내용 중에「논어」선진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공자가 광나라에서 위험한 일을 당했을 때, 가장 아끼던 제자 ‘안연’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한참 후에 나타났다. 공자는 혹시 제자에게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염려하여 안절부절 못하다가 며칠 후 무사하게 돌아 온 제자를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 그러자 안연이 대답했다. “스승님이 계신데 어찌 제가 감히 죽겠습니까?”
안연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박학다식하며, 말솜씨가 뛰어난 공자의 수제자였다. 애지중지하는 그런 제자가 행방불명되었을 때 공자의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갔을까. 그래서 공자는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고 말한다. 즉 ‘너는 결코 나를 버리고 먼저 죽어서는 안된다’는 공자의 심중을 표현한 말이었다. 안연은 스승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곧바로 대답한다. ‘스승을 두고 어떻게 제가 먼저 죽을 수 있겠습니까?’
말은 상대의 말을 이해할 뿐 아니라 심중에 담긴 의미까지 제대로 읽고서 자신의 마음속의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TPO대화법이라는 게 있다. 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말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말도 공부가 필요하다. 방관자의 말이 아닌 참여자의 말, 죽이는 말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말은 공부해야 할 수 있다.
잠언에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구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18:4)’ 했고, 논어의 마지막 문장에 ‘천명(소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없고,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말이란 말하는 자의 인격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생각할 때, 말을 온전히 할 수 있는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비롯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을 수 없는 ‘말의 가벼움’을 경험하는 세상에서 참을 수 없는 ‘입의 무거움’으로 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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