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목사(로고스서원)
독서의 귀결은 고전이다. 나는 책을 나름 많이 읽은 축에 속한다고 자부한다. 한 달에 적게는 10권에서 많게는 20권, 그러니까 대략 13~15권 이상 읽는다. 작년 한 해만도 188권을 읽었다. 매해 평균 150권을 읽는 셈이다. 분야와 종류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읽는 편이다. 성경과 신학은 물론이고, 철학, 역사, 문학, 과학, 정치와 사회, 그리고 만화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는다. 하지만 그렇게 읽고 또 읽을수록 뭔가 허전하다.
결국 고전이다. 읽어도 읽은 것이 아니고,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이 별반 다르지 않을 때, 결국 고전을 찾게 된다. 프란츠 카프카가 말했듯이 얼음을 깨는 도끼처럼 내 뒤통수를 후려갈겨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그런 책 말이다. 적어도 백년에서 천년의 세월을 통과하면서 그 많은 이들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미친 결과 고전으로 정립된 그런 책 말이다.
그렇지만 나도 고전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뭐랄까,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막연하게나마 고전은 어려운 책이다, 그 옛날 책이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구닥다리가 아닐까, 하는 등등의 생각을 한다. 그래서 해설서나 입문서를 먼저 읽곤 했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로고스서원의 청소년인문학교에서 최초로 읽은 고전은 플라톤의 「국가론」이었다. 이 책을 읽히기 위해서 먼저 만화책부터 보게 했다. ‘주니어김영사’에서 출간한 「만화 플라톤 국가」이었다. 그런 다음에 ‘돋을새김’에서 나온 것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국가론」이었다. 그런 다음에 백종현교수가 번역한 「국가론」의 1권(100쪽 정도 된다)을 복사해서 주고 읽고 글 쓰고 토론했다. 그런데 아이들 반응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그냥 읽을 껄 그랬다. 플라톤이 쓴 것은 플라톤의 육성 그대로 읽으면 되는 것이었다. 만화는 쉽고 재미있었으나 너무 생략이 많았고, 해설서는 해설한 사람의 해석이 개입되고, 어떤 점에서는 원저자의 것보다 더 어렵다.
다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었다. 이번에는 만화를 빼고, 해설서를 읽었다. 그리고 번역본을 보았다. 중 1, 2는 1권(약 40쪽)만, 중 3은 1-2권(60쪽 가량)을, 고등학생들은 1-2권과 6권(100쪽 정도)을 읽었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비슷했다. 결론은 같았다. 직접 읽는 것이 낫다! 해서, 공자의 「논어」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어떤 해설서 없이 곧바로 읽게 했다. 다만, 한 번에 다 읽을 수 없어서 몇 번을 나누었다. 결론을 말한다면, 너무 좋아들 했다. 「논어」를 그냥 읽어도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군주론」도 다르지 않았다. 그냥 읽게 했고, 그냥 읽었다.
C. S. 루이스가 한 말이 생각난다. ‘옛날 책의 독서에 관하여’라는 글의 일부다.
“위대한 사람은 바로 그 위대함 때문에 그의 주석을 단 현대인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다는 것을 학생이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무리 평범한 학생이라도 플라톤이 한 말을 전부는 아니어도 상당히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교사로서 저는 언제나 젊은이들에게 일차적인 지식이 이차적인 지식보다 훨씬 습득할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습득하기도 대체로 훨씬 쉽고 즐겁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일에 전력해 왔습니다.”(「피고석의 하나님」 홍성사 / 266-267쪽)
고전은 달리 고전이 아니다. 어려워서 고전이 아니다. 누구나 읽을 수 있기에 고전이다. 누구나 감동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에 고전이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라는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을 바꾸어 말한다면, 그 책을 읽기 위해 다른 책을 먼저 읽지 말라는 것, 그냥 그 책은 그 책으로 이해하라는 것이다. 성경을 읽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읽는 책이 성경 보다 더 어렵다. 하나님이 쓴 책과 사람이 쓴 책 사이에 어느 것이 더 잘 쓴 책이겠는가. 마찬가지다. 고전을 읽는 고전적 방식은 따로 없다. 고전을 해설서를 통해 읽으면 고전을 면치 못하리라. 그냥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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