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斷想

박 영 규 관장(모라종합사회복지관, 산정현교회)

단상 하나, 초등학교 때까지 본의 아니게 두 교회를 출석했다. 방학 때는 어머니 가게가 있던 시내 인접한 모교회인 ‘산정현교회’를 다녔고, 평소에는 집이 있던 범일동 산복도로 근처 ‘부산진재건교회’에 나갔는데, 신사참배 반대로 옥살이 한 목사님을 비롯해 순교신앙의 자부심이 대단한 교회였다. 당시 목사님은 예순이 훨씬 넘은 여자 분이었는데, 결혼도 안 하고 평생 교회만 섬긴 아주 엄격한 분이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이브, 아동부 성극 발표회를 하는 중이었다. 평소 예배당에서 예배 이외에 딴 짓(?)을 절대 못하게 했으나, 그 해는 교사들이 큰맘 먹고 아이들을 위해 사고를 치기로 하고, 귀가 어두운 목사님 모르게 조심스레 움직였다. 한창 열기가 오를 즈음, 어떻게 아셨는지 예배당 안으로 뛰어 들어오시더니 소품들을 내 던지며 호통을 치시는 거다. 어린 마음에 문득 “성전을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며 장사치들을 내쫓던 예수님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의자도 없이 마룻바닥에서, 11시에 1부 예배드리고 잠시 화장실 다녀와서 12시부터 2부 예배 그리고 저녁예배까지 드리던 교회, 주일에 어떤 명목으로든 한 푼이라도 쓰면 난리가 나고 그래서 동래에서부터 10km를 걸어서 오가는 교인들이 있던 교회, 요즘 같으면 고루하다고 다 나가버리거나 이단 아니냐고 의심할 만한 교회였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원칙에 입각한 신앙훈련은 악동으로 이름 높던 예닐곱 개구쟁이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6-70년대 시대적 격랑과 IMF를 견디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명도 낙오 없이 여전한 신앙의 반열에 머물게 한 힘이었다. 그 아이들 중엔 목사 둘과 선교사가 포함되어 있다.
단상 둘, 1995년 크리스마스 새벽, 성탄 예배를 드리던 중 날아든 소식에 산정현교회 교인들은 모두 탄식과 함께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했다. 장기려 장로의 소천 소식이었다. 사랑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날 새벽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다 가신 장기려 장로, 아직도 묘한 느낌을 지을 수 없다.
그는 훌륭한 의사이자 누구나가 다 아는 사회봉사인 이었다. 무소유의 삶으로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우리사회에 수많은 공헌을 했음에도, 하늘나라 가서 받을 상이 없다며 세상의 칭찬을 경계하고, 20년 가까이 섬기던 병원 터에 기념으로 흉상이라도 하나 만들자던 제자들에게 자신을 우상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사탄이라 꾸짖던 장기려 장로...그에게는 어디서건 “하늘에 계신 우리들의 아버지~”로 시작하는 기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어린아이 마냥 순수한 믿음과 말씀에 순종하는 실천적 삶이 있었다. 그는 그 어떠한 명칭보다 선생이란 호칭을 좋아했는데, 후진들에게 삶의 사표로 남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선지 그의 삶의 궤적을 쫓으려는 사람들 중엔 아직도 선생님이라 부르는 이들이 많고, 근본주의적이라 할 수 있는 신앙이 바탕이 된 그의 삶과 그리스도 사랑의 실천은 청십자복지회를 비롯해 생명의전화, 장애인재활협회, 청십자신용협동조합, 기독의사회, 장미회 등 수많은 곳에서 후배들에 의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그 걸음 그대로..’

201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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