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섭 목사(성상중앙교회 담임, 부산NCC 회장)
성서에는 광야가 많다. 시나이 쪽의 큰 광야는 무섭고 두려운 곳이었다.(신1:19) 그런데도 그 광야는 구원의 문이기도 했다. 수르광야는 홍해를 건너는 은혜의 절정을 맛보다가 쓴물밖에 없는 사흘 길 나섰다 물 한 방울이 없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살얼음 판 같은 인생살이를 기가 막히게 깨우치고 신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사는 지혜를 하나님께 매맞아가며 배우던 곳이었다. 미디안광야는 모세가 사람되고 지도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품고 있던 광야이고 아라바 광야는 가장 더운 지역의 뙤약볕을 견디며 가야하는 향유대상들의 돈벌이 길이었고 중세 순례자들의 길이기도 했다. 바란 광야도 있고 브엘세바 광야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대표적인 광야는 유대광야다. 그곳에는 아골 골짜기가 있고, 에스겔의 환상은 성전에서 흐르는 물이 유대광야를 거쳐 염해까지 흘러간다. 그리고 그 유대 광야의 끝에서 반전의 희망을 본다. 이스라엘의 죄를 씻기 위해, 아사셀을 위해 염소를 유대광야로 보낸다. 엘리야는 고통에 찬 세월을 광야에서 견디어냈고 이 후에야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 요한은 평생을 유대광야 주변에서 살다 근처의 요단강에서 사역하고 강 너머 유대광야가 훤히 보이는 마케루스 요새에서 죽는다. 낙타의 털옷을 밤낮으로 걸칠 수밖에 없는 기온 차심한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은 오히려 진수성찬이었다. 예수님은 사십일을 광야에서 아예 금식으로 지내시면서 온몸을 비상상태에 몰아넣고 다 비어내셨다. 왜 모두다 광야로 떠났는가?
텅비고 아득히 넓은 들, 돌보지 않아서 버려진 땅 이런 단어의 뜻은 광야를 선명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원래 돌볼 수가 없는 땅이었다. 텅 비었다는 느낌도 있지만 훨씬 장엄하기도 하고 을씨년스럽고 척박하기도 하다.
이런 느낌은 사막과의 차이에서 온다. 사막은 오히려 훨씬 아름답다. 사막은 비가 거의 오지 않지만 광야에는약간의 비가 온다. 그 결과 약간의 나무와 풀들이 생존하고 계절이 우기로 바뀌면 생명들이 그 존재감을 내비치고 건기가 되면 그 죽음이 메마른 건초가 되어 바람에 날린다. 그곳에는 돌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깨어진 암석 부스러기들로 가득하다. 때로는 거대한 협곡이기도 하고 그저 별 쓸모없는 잡석더미이기도 하고 돌부스러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면에는 꽉 채우는 뜻이 있다. 나무는 무거운 것들을 다 떨구어 내고서야 비로소 겨울을 견딜 수 있다. 버림받은 것 같은 땅에 힘이 있다. 왜냐하면 다 비워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말씀하신다. 시류에 흔들리는 무기력한 모습도 아니고 자연이나 벗 삼아 청풍 명월하는 도피도 아니다 화려한 지위도, 권력을 휘두르는 통쾌 무비한 쾌감도 아니다. 광야로 간 이유는 하나님을 느끼게 해주고, 보여주고, 그래도 제일 하나님 생각에 가까운 사람을 찾아 나섰다. 성경은 그 사람을 선지자라 부른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왕궁이 아닐까?
우리의 모든 욕망으로 정확히 대표되는 왕궁 그곳으로 모두가 달려가는데 왜 길을 바꾸어 광야로 갈까? 왜 반대로 갈까? 다 비워낸 곳이기 때문이다. 없는 곳, 빈곳이 아니라 비워내는 곳이다. 일부러 가서 비워낸다. 금식하면서까지 비워내도록 보여주신다. 우리가 기독교 위기라고, 신자들이 줄어든다고 우리자신을 진단할 때 조심스럽게 다시 생각해 보자. 총회의 계절이다. 신문에 나오는 수 많은 기사에 왜 내가 회장을 한 번 더 해야 하느니, 나 아니면 안된다느니, 얼마가 드느니, 우리가 이런 대단한 것을 했다느니! 안하무인, 아전인수를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는가? 우리의 수준은 스스로를 얼마나 비워낼 수 있는지 또 그 비워 낸 자리를 다른 이에게 내어 줄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 다른 이를 위해 주님이 비워 둔 자리를 우리가 빼앗는 것이 될 법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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