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지일 교수(부산장신대학교)
연이어 열리는 국내외 행사로 인해 부산을 찾는 방문객들이 늘고 있다. 부산은 남녀노소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문화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기독교 유적지들도 많이 있다. 특히 지역문화관광자원과 기독교유적지가 중구와 동구에 밀집되어 있어, 그 연계성, 접근성, 활용성이 뛰어나다.
일본의 나가사키 그리고 한국의 부산 : 부산의 기독교 유적지의 개발과 활용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일본 나가사키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나가사키와 부산은 많은 유사성이 있다. 첫째로, 나가사키와 부산 모두 외국과의 교류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나가사키는 1571년 포르투갈과의 교류가 시작된 일본의 관문이었고, 부산은 구한말 모든 외국인들이 그 첫 발을 내딛은 조선의 관문이었다. 둘째로, 나가사키와 부산 모두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곳이다. 나가사키는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이고, 부산은 한국전쟁의 피난지였다. 두 곳 모두 전쟁의 상처가 이제는 역사가 되어 도시 곳곳에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나가사키와 부산 모두 역사적인 문화관광자원과 기독교 유적지들이 집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세계적인 관광지 나가사키는 부산지역 기독교 유적지 개발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부산세관박물관>에서 만나는 구한말 선교사들의 첫 기착지, 조선의 관문 부산 : 구한말 용미산(龍尾山)이 있었던 자리 그리고 현재 광복동 롯데백화점이 서있는 인근에는 부산항이 있었다. 조선을 찾는 모든 외국인들은 부산항을 거쳐 제물포나 원산의 개항장으로 갔다. 태평양을 건너온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오는 이들도 일본을 거쳐 부산으로 왔다. 조선을 찾은 첫 선교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국 상해에서 온 알렌도 미국에서 온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도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부산에 그 첫 발을 내딛었다. <부산세관박물관>에서는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부산의 근현대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조선에 복음을 들고 찾아 온 선교사들이 처음 만난 조선의 모습이다.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의 탁월한 설명은 외지인들도 부산역사 전문가로 만들어준다.
<부산근대역사관>에서 만나는 일제강점기 순교와 배교의 땅 부산 : 17세기 말 조선에 최초로 세워진 신사(神社)가 위치했던 용두산(龍頭山)에는 부산 시내를 볼 수 있는 부산타워가 있다. 얼마 전 독일에서 온 손님들을 모시고 부산타워에 올라갔는데, 모든 주요한 기독교 유적지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설명에 큰 도움이 됐다. 해질 녘 일몰과 하나둘씩 켜지는 도시의 불빛들의 아름다움은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용두산 자락에 있는 <부산근대역사관>과 <백산기념관>을 통해 일제강점기 부산지역 영욕(榮辱)의 역사를 동시에 볼 수 있다. 이곳은 부산 신구교의 성지(聖地)로, 가톨릭센터, 정교회 성모희보성당, 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한국전쟁 시기에 세워진 여러 개신교회들이 위치해 있다.
<40계단문화관>에서 만나는 한국전쟁의 마지막 피난지 부산 : 한국교회의 전국적 확산은 자의적 복음전도와 함께 한국전쟁으로 인해 불가피한 전국화가 이루어졌다. 부산으로 몰려온 피난민들은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해 “흩어진 자들”과 같았다. 한국전쟁 당시 여러 피난교회들이 설립되었고, 이로 인해 부산의 여러 중대형 교회들이 최근 설립 6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부산지역 기독교 성장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전쟁 당시 새문안교회의 임시예배처소로 사용되었던 남성여고 밑에는 한국전쟁의 어려운 피난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40계단문화관>이 있다. 무엇보다 문화관 베란다에서 남성여고를 바라보면 부산에서 숨진 초기 선교사들과 가족들이 묻혔던 복병산(伏兵山) 언덕을 볼 수 있다.
다른 시간, 같은 공간 : 지금은 평범한 부산의 거리가 되어버렸지만, 한국근현대사의 격동기(구한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죽기까지 십자가를 지고 따랐던 믿음의 선진들이 살았던 거룩한 땅이었다. 비록 다른 시간을 살고 있지만, 오래전 같은 공간에서 신실한 신앙인들이 복음의 씨앗을 뿌렸고, 그 믿음의 열매들이 오늘의 우리들이다. 그 거리를 걸으며, 그들의 숨결을 느끼며, 오늘을 살아내기 위한 작은 소망과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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