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덕 목사(샘터교회, 샘터교육문화원장)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계절입니다. 시나부로 하늘을 이고 서 있는 산들은 어디에나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어울림’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성도 좋으신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이토록 아름답게 물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은 조화로움과 어울림의 향연으로 가득한데 ‘사람들의 땅’에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탐욕의 어두움만이 한가득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저 창백한 민낯과 파리하게 시들어가는 자태가 민망할 따름입니다.
갈등을 부추기는 무책임한 말들과 영혼이 담기지 않은 가식적인 행동들, 대결과 대립, 냉소와 조롱의 말이 난무합니다. 반목과 갈등은 일상이 되어버렸고 화해와 용서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독선과 배타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해맑은 아이들의 영혼마저 어느새 시퍼렇게 멍들었습니다.
이뿐인가요? 남과 북, 진보와 보수, 야당와 여당, 세대 간, 종교 간의 골이 깊은 갈등은 일촉즉발(一觸卽發)로 가슴을 서늘하게 합니다. 서로 이를 갈며 칼날을 벼리는 모습들은 섬뜩합니다. 요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민주주의 위기의식, 정의의 위기의식은 단언컨대 사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요즘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 사이도 ‘사람의 땅’의 일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에서 ‘어울림의 영성’은 찾을 길이 없고 마치 황량한 거리에서 나뒹구는 빈 깡통의 딸그락거리는 소음만 들릴 뿐입니다.
성서에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고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을 적대시 한다. 미련한 사람은 명철을 좋아하지 않으며 오직 자기 의견만을 내세운다(잠언 18:1-2, 표준새번역).’라고 했습니다. 이를 재구성하면 ‘자기 욕심만 채우려하고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는 사람은 어울려 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어울림의 영성’을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하나님이 하나이듯 너희도 하나가 되어라, 서로 사랑하여라, 서로 어울려 살라고 가르치시고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참으로 사람됨은 ‘어울림’에 있습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서로 다른 빛깔들이 한데 어우러지기 때문입니다. 어울림의 영성가들은 자기와 다른 이들까지도 기꺼이 품어 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독선과 배타를 모릅니다. 애벌레가 고치를 벗어나 자유로운 나비가 되듯 자기애(自己愛)를 벗어나 모든 이들과의 형제애(兄弟愛)로 충만합니다. 독선과 배타는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주장만 드러내기를 기뻐합니다.
세계교회가 어우러지는 그리스도인들의 잔치가 부산벡스코에서 펼쳐졌습니다. WCC 제10차 총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것은 한국교회에 ‘어울림의 영성’을 일깨우시려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까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투 주교는 교회를 가리켜 ‘무지개공동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개성과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 조화를 이룰 때 교회다워집니다. 다른 빛깔을 가진 교단과 교회들이 어우러질 때 ‘사람들의 땅’은 하늘의 생명으로 생기를 얻게 되고 평화와 정의의 강물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아니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어울림의 영성’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산의 홍엽들이 말을 겁니다. ‘이리로 오세요. 나와 함께 어울림의 뜨락을 거닐어 보아요. 그대가 나와 어울릴 때 온 세상은 아름다운 창조의 빛으로 가득하고, 그대는 신성함으로 충만해져요. 그대여, 오셔요. 나의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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