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덕 목사(샘터교회, 샘터교육문화원장)
‘똘레랑스’가 내게로 왔다. 20여 년 전 독일 유학시절 한독가정세미나에 붓글씨 강사로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세미나는 대체로 독일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 그리고 자녀들로 구성된 20여 가정이 1년에 한 두 차례 수련장에서 며칠 동안 머물면서 한국전통문화와 유산을 배우고 공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한글서예를 통해 한글의 구성과 한글서예기법을 전수하는 일을 맡았는데 대부분 독일인 남편들이 진지하게 참여했다. 세미나가 마무리 될 무렵 서로의 만남에 의미를 간직하고 싶어서 원하는 글을 붓글씨로 써서 선물하기로 했다. 자기 이름을 한글로 써주기도 하고 성경구절을 써주기도 했는데 한 젊은 독일인 남편이 ‘똘레랑스’라는 쪽지를 내밀었다. 나는 처음에 그의 이름인가 했었으나 나중에 사전을 찾아 보고서야 그 말의 의미와 그의 요청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똘레랑스’는 내 삶 속에 들어왔다.
‘똘레랑스(tolerance)’는 프랑스인들의 정신을 담고 있는 말로 우리말에서 관용, 허용, 이해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똘레랑스란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또한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에 대한 자유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정신이다. 즉 상대방의 정치적 의견이나 사상, 상대방의 이념 등을 존중하여 자신의 사상, 이념도 인정받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똘레랑스의 어원은 ‘견디다‘, ‘참다‘를 뜻하는 라틴어 ‘tolerare‘에서 나왔다. 따라서 똘레랑스의 가치는 평범한 ‘너그러움’으로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에 대해서 ‘참고 견디는 것’, 즉 서로 다른 견해와 입장이지만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해서 참고 견디면서 자신을 성숙시켜 이성과 의지를 바탕으로 받아들이는 정신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우리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예수 공동체의 정신과 신념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똘레랑스’다. 처음 예수 공동체는 포용과 관용의 공동체였다. 평범한 어부를 비롯해 농부와 세리, 과격한 젤롯당 사람들, 아리마대 사람 요셉 같은 부자와 유대종교지도자 니고데모, 그리고 백부장 고넬료 같은 로마인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사마리아 여성과 성매매 여성, 죄인으로 낙인찍힌 세리, 한센병자와 각종 장애인들, 어린 아이들까지도 함께 있었다. 도무지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들이 함께 먹고 마시며 예수의 행렬에 함께하는 모습은 경이롭지 않은가. 그들은 서로 기대와 목적도 달랐다. 그러나 예수는 이 모든 사람들을 끝까지 용납하고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예수의 가르침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처럼 하나가 되는 것’(요17:21)이었으며, 이를 위해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했다. 예수의 똘레랑스는 공동체에서 시작하여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룬다. 예수가 달린 십자가가 무엇인가? ‘나’는 죽고 ‘너’는 살고, 다시 말하면 죄악으로 분열된 하나님과 인류를 온 몸으로 받아들여 하나 되게 한 사건이다. 예수는 온 몸을 던져 ‘똘레랑스’를 구현했던 것이다!
<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에서 하승우는 이렇게 설명한다. ‘똘레랑스는 평화로운 공존이 아니라 격렬한 대립 속에서 빛을 발한다. 자신의 생각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는다면 논쟁 자체는 불가능하다. 논쟁이 가능한 것은 완전한 진리, 절대선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히 똘레랑스는 극단주의를 싫어하고 창조적인 주장을 권한다. 힘이나 우격다짐이 아니라 이성적인 토론과 설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토론을 통해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되고 평화가 유지된다. 결국 똘레랑스는 대립을 파멸이 아니라 자유의 실현으로, 상극이 아니라 상생으로 이끌려 한다.’
제10차 WCC 부산총회를 앞두고 한국교계가 다시 분열양상이다. 사순절기이다. 삶으로 가르쳐 준 예수의 똘레랑스를 배우고 실천하는 한국 교회가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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