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영 규 관장(모라종합사회복지관)
이번 12월 25일이면 성산 장기려 장로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7주기가 된다. 사랑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날 새벽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다 가신 장기려 장로, 아직도 묘한 느낌을 지을 수 없다.
얼마 전 서점에 들렀다가 장기려 장로에 대한 책들이 있어 몇 권 훑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본인이 이 책들을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주일학교 사제지간의 인연으로 30년, 그 중에 반은 ‘청십자’라는 울타리 안에서 매일 반나절을 같이 지냈던 터라 그의 사상이나 삶의 방식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접할 수 있었다. 그가 경계한 것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명예욕이다. 그분은 평소 상이나 칭찬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땅에서 상을 다 받으면 하늘나라 가서 받을 상급이 없다는 이유에서 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에 대한 칭찬도 인색했는지 모르겠다. 반평생을 곁에서 모셨던 양아들 같은 제자도 세미나 발표를 마치고 들었던 “잘했어”란 말이 유일했다니 말이다. 그런 분이 자신에 대한 지나친 미화에 맘이 편할 리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어서 함께했던 지난 세월의 편린들이 두서없이 이어졌다. 무소유의 삶, 한국의 슈바이처, 춘원의 소설 사랑의 주인공 등으로 소개되지만 한편으론 성격이 급해 가끔 화도내고, 생신 파티 후 당뇨 때문에 케이크는 안된다하니 니들도 먹지 말라며 투정도 부리고, 추석에 기사에게 명절 쇠라며 2천원 건네다 세상물정 모른다고 옆 사람에게 핀잔 받고 멋쩍어하던 모습, 이렇듯 지극히 소박한 인간 성정을 가진 분이었다. 그런데 선지자도 고향에서는 대접받지 못한다 했는데 일상을 같이 했던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오랜 시간 추억과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에게는 어디서건 “하늘에 계신 우리들의 아버지….”로 시작하는 기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어린아이 마냥 순수한 믿음과 말씀에 순종하는 실천적 삶이 있었다. 그는 그 어떠한 명칭보다 선생이란 호칭을 좋아했는데, 후진들에게 삶의 사표로 남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선지 그의 삶의 궤적을 쫓으려는 사람들 중엔 아직도 선생님이라 부르는 이들이 많다. 장기려 선생님의 사상은 ‘聖山 3訓’에 잘 나타나 있다. “사랑의 동기가 아니면 말을 삼가라.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 하라. 문제의 책임은 자신이 져야한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살았다. 아랫사람에게 항상 경어를 쓰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너그러웠던 분 그러나 불의에 대해선 단호해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율법주의자들과 싸웠듯이 불의나 비진리와 맞서고, 악마의 유혹과 시험을 쳐부수고 승리하는 삶이 곧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서슬 퍼런 유신시절 공식석상에서 역설하던 분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장기려 장로가 지상교회를 끝까지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불편한 입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상당부분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장기려 장로는 교회의 세속화와 형식주의를 개탄하고 맘모니즘을 경계했는데, 교회가 물질가치에 사로잡히고 기복신앙에 빠져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랑의 실천을 소홀히 하면서도 무분별한 외적 성장에만 관심을 갖는 현실에 상당한 갈등을 느꼈음이 분명하다. 언젠가 “내가 이곳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라고 탄식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왔다. 바깥세상이 온통 축제와 환희로 뒤덮일 때 교회서 만큼은 예수님이 오신 참뜻을 헤아리며 예수님의 참된 제자 장기려 장로가 걸어간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 그나저나 최근 들어 교회 문을 나서던 장기려 장로의 심정이 부쩍 가슴에 와 닿는 건 단지 나이가 들어서만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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