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철 목사(좋은나무교회, 시인)
우리 교회는 지하 1층, 지상 3층 구조로 이루어졌다. 땅이 부족하여 예배당은 지하에 앉히고, 1, 2층은 부속 건물로 3층은 목양실과 사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콘크리트의 삭막함을 줄이기 위하여 계단과 바닥에는 나무 마루를 깔았다. 그리고 교회 현관문이 없어 3층 사택까지 아무런 제재 없이 올라올 수 있다.
교회 문이 없다고 열린(Open)교회라 할 순 없지만, 처음 교회를 건축할 때 외부와의 단절 없이 누구도 손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세상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 그러다보니 노숙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3층 목양실까지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와서 도움을 청한다. 자연히 단골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고, 아침에 왔던 사람이 저녁에 또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내 딴에는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심정으로 대한다. 때론 성가시다 싶기도 하지만 이내 그런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런데 어느 때는 좀 무리하다 싶은 요구를 해 오는 사람들도 있다. 사정이 딱하다 싶어 이야기를 들어주다보면 마음이 끌리게 된다.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면 내게 찾아와서 신세한탄을 할까 싶어 있는 대로 다 주어 보낸다. 이런 내용을 아는 교인들 중에는 그런 내가 좀 못 마땅한 모양이다. 내가 어수룩하게 사람들 말에 잘 넘어가고 감동도 잘 받고, 마음이 모질지 못한다는 것이다. 척보면 그래 사람을 몰라보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어수룩한 편이다. 교인들이 지적하는 대로 나는 마음이 모질지 못하고 여린 편이다. 생긴 건 그렇지 않은데 눈물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잘 속는다. 부산에 와서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속은 경험이 있다. 시시콜콜 그런 일을 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 불편한 마음을 오래 붙잡아 두고 싶지 않다. 쉬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가끔 목사의 이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을까?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 사람일까?‘ 나는 평소 목사의 권위주의에 대하여 지나칠 정도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 청산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목사의 권위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사람 냄새가 나는 목사가 좋다. 소탈하고 인간미 넘치는 목사가 되고 싶다. 강단에 설 때 말고는 가급적 넥타이를 매지 않고, 목사 가운도 입지 않는다. 성찬을 집례할 때도 입지 않는다. 작년에 예배당 수리를 하면서 강단에 임금님 용상같이 생긴 의자도 다 치워버렸다. 달랑 접이 의자를 하나 놓았고, 강단 높이도 대폭 낮추었다. 말을 점잖게 한다고, 목사 가운을 입고 임금님 용상같이 생긴 의자에 앉는다고 목사의 권위가 부여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교인들과 등산하는 걸 좋아하고, 노는 것도 좋아하고, 잘은 못하지만 운동장에서 볼을 차는 것도 좋아한다. 볼은 잘 차지 못하면서 괜히 소리만 지르는 편이다. 사람 냄새나는 목사가 되고 싶지만, 그렇다고 내가 다정다감한 사람도 못 된다. ‘느릿느릿‘이라는 표지를 붙들고 살지만 언제나 급한 편이다. 밥도 남보다 빨리 먹는 편이다. 다른 사람 눈치도 잘 안 본다. 그저 하느님 눈치만 보고 살면 되지, 이 사람 저 사람 의식하고 눈치보고 그렇게 하는 건 딱 질색이다.
시골 목회를 20년 하다 도시에 와서 9년째 살면서 여전히 촌티를 벗지 못하고 있다. 세련되고 쿨한 목사가 못 되어서 교인들도 때론 답답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크게 실망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못난 목사의 말을 고분고분 따라주고 거기다 밥까지 먹여주니 고맙고 황송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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