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목사(로고스서원)
포항에 위치한 한동대 본관 위편에 세계 지구와 함께 “Why not change the world?”라는 인상적인 문구가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왜 세상이 변하지 않는가?” 이 말은 이 땅을 살면서 변혁을 꿈꾸는 그리스도인의 염원을 집약한 말일 겁니다. 그 행간의 의미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변화된 신자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기에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물음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일깨웁니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 세계가 이리도 혼탁하고 패역한 세계가 되었는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세상을 돌볼 책임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자기 할 일을 망각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자기 개인의 지고한 영성을 관리하기 위해서 타락한 세계의 신음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쓴 소리입니다. 마치 간질하며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막 9:18) 산 아래 세상을 방치한 채 산 위의 복락에만 매달려 잠들어 있는 또 다른 베드로를 고발하는 소리입니다.
이 물음의 여러 전제들 중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세상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더 나아가 존재론적으로 세상과 다르다는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한 마디로 ‘교회는 세상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신자에게서 세상과 하등 다른 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지극히 적은 양의 소금 농도로도 바다를 짜게 만드는데, 우리는 우리가 변혁하고자 하는 세상의 순도보다 2% 부족합니다. 기독교인이 20%를 상회하고, 기독교인 정치인이 국회의석 과반수를 장악해도 예수의 맛과 멋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신자가 불신자들보다 더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세상이 여전히 변하지 않는 까닭은 “내가 변화시키고자 하는 세상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인데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세상 한 가운데 살아야 하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인 성공과 고지, 그러니까 자본이라는 맘몬의 노예입니다. 그러니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킬 리 만무합니다.
철학의 혁신은 객체에서 주체로의 전환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우주에서 인간을 탐구 주제로 삼은 소크라테스, 객체에서 주체로 인식을 전환한 데카르트와 칸트, 그리고 대상에서 언어로 전회한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 등은 사회 개혁과 교회 갱신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밖’이 아니라 ‘안’입니다. ‘너’가 아니라 ‘나’입니다. ‘세상’이 아니라 ‘교회’입니다. 이것이 출발점이자 귀결점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한참 어리고 젊었을 때 나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좀더 나이가 들어서 그것이 부질없는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는 나라를 바꾸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좀더 나이가 들어서 그것 역시 부질없는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바꾸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좀더 나이가 들어서 그것 또한 부질없는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내 가족들을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되지 않았다. 내가 죽기 전 나는 깨달았다. ‘아 아, 내가 변했더라면!’ 내가 변하면 나를 보고 가족들이 변하고 가족들이 변하면 동네가 변하고 동네가 변하면 나라가 변하고 나라가 변하면 세상이 변했을 것을….”(무명의 수도승)
왜 세상이 변하지 않느냐고요? 이렇게 질문을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 교회는 변하지 않는가?” “왜 나는 아직도 그대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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