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동그라미는 없다


안중덕 목사(샘터교회/샘터교육문화원장)


지난 4월 20일은 정부가 지정한 ‘장애인의 날’이다.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는 보건복지부가 주무부처로 참여하고, 장애인복지단체협의회와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등이 기념식과 축하 행사를 주관하며, 전국 각 시·도에서 장애인 체육대회와 장애인의 날 기념식을 열어 장애인의 화합과 친선을 도모하기도 한다.
올해 4월 20일에도 서울은 물론 각지에서 ‘생각의 장애를 넘어 따뜻한 사회로’라는 슬로건을 걸고 제32회 장애인의 날 행사를 가졌다. 그런데 언론과 SNS에서 주목을 끈 것은 이 행사가 아니었다. 이목을 집중시킨 행사는 같은 날 보신각에서 97개 시민사회노동인권단체 활동가와 회원, 그리고 이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참여한 ‘420장애인차별철폐의 날’ 기념행사였다. 이들은 4월 20일을 장애인이 대상화되는 ‘장애인의 날’로 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인간적 권리 확보를 위한 ‘420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장애인의 날’은 비장애우의 입장에서 장애우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 주는 날로 이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들의 주장은 매우 타당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장애우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미국에서 백악관 차관보를 지낸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강영우 박사는 중학교 시절 실명한 후 많은 고난과 역경을 기독교 신앙과 비전을 통해 이겨내고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76년 한국 최초 시각장애인 박사가 되었다. 그는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거쳐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 겸 루즈벨트 재단 고문으로 세계 장애인의 복지향상을 위해 헌신해 왔었다.
그가 지난해 11월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 조용하게 생을 마무리하면서 지인들과 고국의 국민들에게 도리어 위로와 감사의 편지를 보내서 많은 감동을 안겨 준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사명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면서『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라는 유고작을 남겼다. 이 책에서 그는 시각장애인으로 살아 온 삶이 결코 무의미한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축복의 시간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장애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병과 같은 것으로 장애인 인권과 복지를 위해 우리 모두 힘써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강영우 박사의 성숙한 삶의 자세와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모습은 비장애우들의 편견과 차별을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며칠 전 우연하게 인터넷 상에서 발견하여 읽게 된 시가 있다. 2004년 장애인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힌 ‘완전한 동그라미란 없다’라는 강지현 님의 시이다.
수없이 많은 동그라미 속에서/완전한 동그라미는 없다/멀리서는/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구르거나/모든 걸 담을 수 있을 만큼 깊거나/잃어버리지 않을 중심이 있지만/조금만 다가서면/헝클어진 곡선들이 동그라미를 이루고 있다/여기서/어느 한 부분 곡선이 옅어졌다고 해서/느린 동그라미가 아니라/어느 한 부분 찢어졌다고 해서/담을 수 없는 동그라미가 아니라/어느 한 부분 부딪혀 멍이 들었다고/중심 잃은 동그라미가 아니라/조금만 더/눈길을 주고/손길을 건네고/사랑을 쏟아야 할/동그라미일 뿐/겉으로 보기에/완전함과 다르다 해서/불완전한 것은 아니다/불완전한 선을 완전한 선으로/바꾸기 위해/눈길을 주고/손길을 건네고/사랑을 쏟는다면/수없이 많은 동그라미 속에서/불완전한 동그라미는 없다
우리가 반드시 버려야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장애우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다.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가꾸는 것이다. 세상에 완전한 동그라미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하면 불완전한 동그라미도 없을 것이다.

201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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