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한국교회에서 신비주의가 대두된 것은 1930년대였다. 신비주의만이 아니라 신령주의 주관주의 거짓계시운동도 일어났다. 1920년대의 경제적 시련과 일제 치하의 암울한 현실이탈 역사적 신앙의 주관화를 초래했을 것이다. 황해도 장연 출신인 황국주(黃國主)는 1933년경부터 자신을 신언(神言)의 대변자로 자처하면서, ‘한국의 주’라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적당히 취음하여 ‘한국의 주’라고 말하면서, 장발의 머리를 길게 내리고 수염을 길러 흡사 예수님처럼 꾸미고 예수님의 화신(化身)으로 자처했다. 1933년 5월 『영계靈界』라는 잡지를 발간하고, 새 예루살렘을 찾아 순례 길을 간다며 함경도와 강원도를 거쳐 서울로 향할 때 많은 군중이 그를 추종했다.
그런가 하면 원산의 감리교 신자 유명화(劉明化)는 1927년경부터 예수가 자기에게 친히 임하셨다며(親臨) 도처에서 집회를 인도하며 교회를 소란케 했다. 그는 방언 예언으로 자신을 특수화하고, 예수처럼 외양을 꾸미고 이유신이라는 여성에게 강신극(降神劇)을 자행하기도 했다. 1932년의 일이었다. 이 때 간도 출신 전도사 한준명(韓俊明)은 유명화의 파송을 받고 1932년 11월 평양에 와서 입류강신극(入流降神劇)을 벌이며 파문을 일으켰다. 평양신학교 졸업생인 백남주(白南柱)도 유명화, 한준명과 결탁하여 신비주의적 거짓예언에 가담했다. 백남주는 ‘원산 신학산’이라는 일종의 사설 신학교육원을 설립, 운영하던 환상적 종교가였다. 그는 1933년 1월에는 『새생명의 길』이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구약은 생명을 들려주고 신약은 생명을 보여줄 뿐이지만, 자신은 생명을 받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회를 분리하여 1천여명의 신도를 얻었다. 후에는 평북 철산의 자칭 ‘새 주(主)’라는 김성도(金成道)와 결탁하여 성주교회(聖主敎會)라는 또 다른 분파를 만들었다.
그런데 1932년 늦은 가을, 이 집단의 한준명이 평양 산정현교회 집회에서 여집사에게 채면을 걸고 “주가 오시었다”고 선언했다. 교회는 난리가 났다. 목사 교회지도자 신학생들까지 몰려와서 이 여자에게 “오 주여” 하며 죄를 회개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것이 소위 ‘새 예수’사건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한 평양노회는 1932년 11월 28일, 한준명 집단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이에 참여한 전원을 엄중치리하기로 했다. 한준명을 평양교계에 추천한 이가 감리교의 이용도 목사였는데, 이 일로 그도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목사나 장로는 각 노회에 맡겨 치리하게 했으나 신학생은 평양신학교 교장에게 처리하도록 했다. 그런데 믿기지 않지만 이 집회에 참여했던 한 사람이 박윤선이었다. 조선출은 그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평양에는 별 희한한 일도 있었다. 소위 ‘새 예수 사건’이 그것이다. 함경도 원산에서 온 어떤 여자가 천사라고 하는 어떤 남자에게 비스듬히 누워서 새 예수를 잉태하였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가서 큰 절을 하면서 ‘오 주여 오시옵소서’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상당한 사람들이 몰려가서 추태를 부리게 되었다. 후일 굴지의 신학자가 된 박윤선 목사도 그때 신학생으로 숭실중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도 거기 가서 ‘오 주여 오시옵소서’라고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짓궂은 학생들이 사감실 앞에 가서 그 흉내를 내고 도망치곤 했다. 한,두학생도 아니고 너무도 많은 학생들이 시도 때도 없이 그 모양이니 박윤선 사감이 사면하고 말았다. 그것은 한 때의 실수였다.”
당시 평양노회의 권위는 모란봉도 머리를 숙이게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관련된 신학생들은 두려운 가운데 교장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라부열(Stacy Roberts) 교장은 복도에서 박윤선과 마주치게 되었다. 크게 호통을 치고 노회의 지시에 따라 중징계를 할 것으로 알았는데, 교장은 딱 한마디 했다. “박윤선! 잘 믿으려고 할 때 그런 실수도 있지요.” 박윤선의 중심을 알았던 교장은 한 번의 실수를 용서했다. 그러기에 고대 로마인들이 “실수하는 것이 인간이다”(Errare Humanum est)고 하지 않았을까? 라부열 교장의 관대함이 없었다면 오늘의 박윤선 박사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부열은 “신학에는 엄격했으나 법에는 관대하였다.” 김인서의 평가이다. 용서받은 박윤선도 60년 후 이렇게 회고했다. “라부열 교장은 겸손의 덕을 지닌 관대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칼날같은 잣대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인재를 키우는 관대함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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