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6월. 외국공사관과 선교사들이 밀집해 사는 서울 정동 거리에는 유례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외인거리 외곽과 소위 양관(洋館)이라고 불리던 서양인들이 거주지에는 알 수없는 불안에 휩싸였다. 해괴한 소문이 꼬리를 물면서 확대 재생산되어 조선인들에게 전파되었고, 조선인들의 분노가 수면 위로 분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의 진원은 근거 없는 한 가지 괴담(怪談)이었다. 서양 선교사들이 어린아이들을 납치하여 장기를 적출하여 약으로 쓰고, 아이의 눈알은 사진 자료로 쓴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이 전파되면서 내용이 다듬어지거나 보태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간은 항아리에 담아 말린 후에 약제로 사용한다느니, 아이들을 몰래 외국으로 보내 노예로 팔아먹는다니, 심지어는 아이를 삶아 먹는다는 말까지 퍼졌다. 이른바 ‘아헤 소동’(baby riot)이라는 괴담이었다. 1888년 6월 10일 경부터 산발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 소동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을 가져왔다.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고아원이나 기독교 학교는 타격을 입었다. 서양 선교사들은 되먹지 못한 인간으로 비난을 받았고, 사악한 양코쟁이로 폄하되었다. 고아원을 열었던 언더우드의 인도주의는 의심을 받았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아이를 가진 어머니는 거리를 지날 때 치마폭에 숨겼다. 이화학당의 피해는 더욱 컸다. “흥분한 군중들이 두 차례나 우리 학교를 습격하여 학교 고용인 두 사람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스크랜톤의 보고였다. 이 근거없는 괴담으로 성난 군중들의 시위가 일어났고, 유혈사태로 발전한 것이다. 정동 일대에 밀집해 있던 외국 공관들은 주재원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정도 이상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미국공사는 1888년 6월 15일자로 지금의 외교통상부인 독판교섭통상사무에 보낸 ‘아동포식허설(兒童捕食虛說)에 對한 해혹조처(解惑措處要求)’라는 공문에서 이렇게 요청했다. “이 허튼 소문으로 인해 조선 정부도 괴로우실 것으로 사료되오나 귀 장관과 고위 관헌들은 이러한 허무맹랑한 소문이 믿을 수 없는 것인줄 알기에 아뢰옵니다. … 정부가 전국에 방을 만들어 관인(官印)을 찍어 제시하여 각처 성내마다 붙혀 이 소문이 옳지 않음을 알리소서…”
오죽 했으면 주한 외국 공사가 이런 요구를 했을까? 조선 정부는 조치를 취했다. 소문의 진원, 소문의 발설자가 있으면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엄히 다스릴 것이라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괴담을 잠재울 수 없었다. 괴담은 꼬리를 물고 전파된 이후였다.
제물포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 해군 병력을 서울로 출동시켜 공사관을 경비했고, 미국과 프랑스도 자국 병력을 동원하는 등 소동을 벌였다. 근거없는 유언비어에 불과했지만, 괴담은 불안을 야기하고 민중들에게 반 서구, 반 선교사 감정을 심어주었다. 이 사건의 배후는 외세와 협력하여 한국의 문호개방을 주도하던 개화지향세력에 대한 견제로 보수세력이 의도적으로 유포시킨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정치적 허위선전이라는 점에서 데마고기(Demagogy)에 가까웠다.
요즘 우리 사회에 괴담이 판을 친다고 한다. 근거 없는 뜬소문이 사실인양 인터넷을 점령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차라리 귀신 이야기라면 섬뜻한 재미도 있지만 불신을 조장하는 괴담이 설친다니 분명 우리 사회가 병들어 있다. 광우병 소동에서부터 FTA괴담, 방사능 괴담에서 모 연예인이 죽었다는 등 뜬소문이 사실인양 회자되고 있다. 특정 정치인이나 집단을 매도하기 위한 괴담도 있고, 거짓을 사실인양 저주에 가까운 무슨 꼼수 괴담에서 유언비어는 활개를 치고 있다. 대중의 무지를 이용하기도 하고, 그 무지가 괴담의 위력을 더해주기도 한다. 문제는 괴담에는 숨은 의도가 있다는 점이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모해하려는 동기가 그것이다. 괴담을 유포하여 혼란을 부추기고 그것을 통해 자기 집단이나 조직의 야망을 이루려는 의도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괴담은 정치 음모, 데마고기(Demagogy)의 성격이 짙다. 괴담이든 유언비어든 데마고기든 부정한 동기는 개인과 사회와 집단을 병들게 한다. 노사학자 이인화선생의 말은 옳다. “우리에게 무서운 것은 사기꾼이 아니라 정치음모꾼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