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부산의 여름

2011년 여름 마지막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의 마지막 토요일, 부산의 기독교 유적지 탐방을 떠났다. 얼마 전 제작한 「부산의 기독교 유적지」 가이드북을 들고, 사진을 좋아하는 동료 교수님과 함께 주말의 부산 도심으로 출사(出寫)를 떠났다. 유적지들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스토리를 나누며 부산지역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들을 찾아보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복음을 들고 조선을 찾아온 선교사들이 첫 발을 내 딛었던 부산항(현재의 부산데파트 인근),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강요의 상징으로 조선에서 가장 처음 세워진 신사(紳士)가 있었던 용두산 공원, 조선 수탈의 첨병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위치했던 부산근대역사관, 한국전쟁 당시 절박했던 피난살이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40계단문화관, 부산지역 복음 선교의 열매인 부산진교회, 의료선교의 열매인 일신기독병원, 교육선교의 열매인 부산진일신여학교기념관 등을 방문했다. 지금은 평범한 부산의 거리가 되어버린 곳들이지만, 지난 한 세기동안 부산에서 살아온 신앙인들의 발자취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허기지고 땀범벅이 된 몸으로 국제시장 노점에서 당면국수와 충무김밥으로 유적지 탐방을 마무리 하면서 느낀 것은, 부산은 복음화율이 저조한 불교의 땅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기독교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성시(聖市)라는 사실이었다.
2011년 여름 부산은 이단들로 인해 부산한 시간을 보냈다. 지난 7월 대학가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기쁜소식선교회(박옥수 구원파)의 IYF 월드캠프가 해운대 벡스코에서 개최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3000여 명의 IYF 청년들이 부산 곳곳을 누비며 포교활동을 펼쳤다.
또한 8월 15일에는 부산역 광장에서 신천지의 위장단체인 좋은사람실천운동본부 주최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무대 위에는 백마 한 마리가 있었고, 이만희 씨는 자신이 마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백마를 탄 사람인 것처럼, 낯 뜨거운 퍼포먼스도 벌였다. 이날 집회가 선거철을 앞둔 시점에서 자신들의 숫자를 과시하며 정치권을 향한 구애의 시간을 가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비윤리적인 포교행태와 탈세혐의 등으로 교회와 사회에서 숨어있을 곳이 없는 신천지가 부산에서 본격적으로 커밍아웃했다.
부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이단들이 태어난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에 통일교가 시작되었고, 1960년대 중반 해운대에서 하나님의교회가 시작되었다. 통일교의 문선명 씨는 부산 범내골에 둥지를 튼 자칭 “재림주”이고, 하나님의교회의 안상홍씨는 부산 해운대에서 등장한 자칭 “재림 그리스도” “하나님”이다. 통일교가 20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이단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교회는 21세기 한국교회가 가장 경계해야할 이단이다.
2011년 여름 부산의 두 모습을 보았다. 아름다운 기독교의 성지(聖地) 부산, 그리고 이단들과의 영적 전쟁터가 되어버린 부산의 모습이었다. 다음세대들이 경험할 부산의 모습이 어떨지 자못 궁금해진다. 우리 아이들에게 부산은 기독교인으로서의 가슴 뿌듯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기독교의 성시(聖市)일까, 아니면 타지의 친구들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운 이단의 요람(搖籃)일까?

201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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