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는 행복을 합성해내는 능력이 있다. 엄청난 재앙을 겪은 사람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재앙을 딛고 일어서고, 엄청난 행운을 얻은 사람도 그 행운을 뒤로 하고 예전과 비슷한 심리상태와 생활양상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항상성을 말하는 것인데, 그러한 항상성에 긍정하려면 또 다른 전제조건이나 변수는 달리 없을까?
생명의전화 상담현장에서 위기에 처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한 사람 한 사람의 크고 작은 비극이 비단 그만의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한사람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 죽고 싶은 심정으로 고민하고 절대고독에 처할 때, 그 상처 입은 심령은 가족과 이웃 모두에게 연결된 고리를 통해 그 통증을 전달한다. 그러나 이 상처 입은 마음들은 서로를 외면하거나, 심지어는 스스로를 외면한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혹은 누군가가 죽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보살피지 않고 덮어두므로 마치 회칠한 무덤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은 지난 해 1만 오천명이상, 자살로 인한 사망자를 기록한 우리나라의 통계적 현실로 드러나게 된다.
경제학자 알버트 허시먼은 어떤 정책이나 소속한 조직에 대해 사람들은 보통 세 가지 유형의 행동을 한다했다. 애정을 가지고 순종하거나, 저항하며 목소리를 내거나, 못 참고 떠나거나, 셋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선택하여야 할까? 참고 순종하며 살아야 할까? 저항하여야 할까? 떠나야할까? 오늘날 죽고 싶거나 죽으려 하는 사람들, 죽은 사람들은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1개 사단병력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떠났다.
자살예방분야에서 일하는 우리는 이들 자살자도 문제이지만, 통상 10배를 넘는다고 하는 자살미수자도 문제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살고 있으면서도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살아도 죽은 것만 같지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이들의 존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는 어쩔 수 없이 통계와 지표로 정책을 수립하고 그 성과목표 또한 세우겠지만, 스스로 자해하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한 사람과 그가 처한 우리 사회의 병리를 제대로 유추해 낼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단군 이래 가장 잘 사는 나라, 세계 242여국 중 국민소득순위 10위권, 대한민국은 엄청 잘 사는 나라가 맞는데, 어째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양극화로 경제, 사회적 불평등은 악화되고, 사회안전망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취약하고, 빈곤은 대물림되고, 다양성도, 틈도 허용하지 않는 교실에서 실패자만 양산하는 교육제도, 승자독식문화가 지배하는 거시적틀, 그나마 무한도전이 가능했던 고시제도도 폐지되고, 억대 등록금이라 수군 대는 로스쿨을 가야만 법조계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높은 사교육비와 비싼 등록금은 계층이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학업도, 취업도, 결혼도 끼리끼리 한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 그때는 희망이 있었다.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슬하에 여러 남매를 두고 사람사는 법도를 가르쳤는데, 이제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고 생태계는 피폐한, 자살률 세계 최고, 출산율 세계 최저의 나라가 되었다.
한국교회는 무엇을 말하여야 할까? 세계10대 교회 중 여섯 교회가 한국에 있다고 한다면, 책임이 없지 않다. 환경재앙, 노동종말, 극도의 양극화가 진행된 사회에서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할지, 교회와 기독인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믿음 안에서 소외된 이들, 생명을 품고 가는 참으로 공정한 사회를 꿈꾸면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신 예수의 행적, 그 길을 함께 걸어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걷지 못할 길이라면 예수께서 함께 걷자고 하시지 않았을 것이기에 희망을 새롭게 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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