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아무래도 어이가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이러시면 말이 안 된다. 성경을 읽으면 우리네 이성으로 좀체 가늠하기 어려운 텍스트가 어디 한 두 군데일까 마는, 아벨을 죽인 가인을 대하는 하나님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아니 할 수 없다. 살인자 가인을 죽인 벌을 칠 배나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응당 가인이 받아야 한다. 의인 아벨을 죽인 가인이 칠 배를 받고, 죄인 가인을 죽인 벌은 한 배면 적당하다. 그런데 모든 게 뒤집혔다.
따져 볼 게 더 있다.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바를 웬만한 신자라면 다 안다. 그것은 완전 숫자이다. 거룩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가인의 생명을 해하는 자를 철저하고 완벽하게 응징하시겠다는 것이다. 어찌 이리도 사악한 죄인을 두둔하신단 말인가? 어떻게 가인을 죽이면 벌이 칠 배란 말인가.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캐묻는 김에 몇 가지 더 내쳐보자. 반대로 가인에게 벌주는 자를 내버려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벨을 죽인 가인을 누군가 정의의 이름으로 세계 최초의 살인범을 살해할 것이다. 그는 드디어 정의가 죽지 않았음을, 그리고 제 손으로 정의를 집행했다고 의기양양할 것이다. 그러나 가인 편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인을 사랑했던 한 사람에 의해 또 다시 땅은 피로 적셔질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께서 가인의 생명을 보호하신 것은 살인이 더는 발생하지 않으려는 고육책이다. 살인한 자를 살인으로 응징하는 것을 허용하는 순간, 세계는 창조 이전의 카오스로 뒤덮인다. 악과 폭력은 전염성이 강해서 눈에는 눈으로 그치지 않고 눈에는 얼굴 전체로 되갚고, 얼굴을 다친 자는 상대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몸이 망가진 자는 상대방의 생명을 빼앗으려 할 것이다. 악과 폭력의 에스컬레이션은 무한 확대될 것이 뻔하다. 가급적이면 초기 단계에서 중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 가인을 죽이는 자를 일곱 배나 벌을 줌으로써 사회의 질서를 유지·보호하려는 하나님의 속내는 받아들인다고 하자. 허나, 가인에게 표를 준 것은 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이 표는 죄인이라는 낙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용서와 자비의 표이다. 하나님께서 가인처럼 패악무도하고, 사악한 존재라 할지라도 사랑한다는 증거를 온 천하 만방에 널리 알리는 표징이다. 아무리 나쁜 죄인이라도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이런, 이러고 보니 가인을 탓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 죄인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임을 단박에 안다. 요컨대, 우리는 예수의 죽음, 곧 부당한 재판과 무고한 죽음에 대해 공모자요 가담자다. 그러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면, 우리는 예수를 죽였다. 가인이 최초의 살인자라면, 우리는 최고의 살해자다. 우리는 가인과 함께 아벨을 쳐 죽였고, 가인은 우리와 함께 예수를 못 박았다. 나는 가인이다. 가인이 나다. 하여, 가인을 용서하는 하나님이 부당하다면, 나를 용서하는 하나님도 부당하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안 된다. 나는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가 내게 미친다면, 그분의 은총이 가인에게도 허용되는 것을 내 어찌 부당하다, 황당하다, 따질 수 있나. 만일 가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비판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말이다. 가인을 정죄하는 순간, 나 또한 정죄 받아 마땅하다. 가인이 아니라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 8:7)
이 땅, 한반도에 전쟁과 난리의 소문이 들려온다. 예수님이 원했던 바로 그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폭력과 분란이 끊이지 않는다. 가인이 가인을 낳고, 가인이 가인에게 일흔일곱 갑절로 보복한다. 용서가 없는 곳이야말로 에덴의 동쪽 놋 땅이다. 이 땅이 놋 땅이 된 걸까? 아벨의 후손, 예수를 닮아야 할 이들이 가인의 후손, 라멕을 닮아가는 것은 왜일까? 죄인을 용서하는 하나님도 희한하지만, 용서받고도 복수하려는 죄인도 희한하다. 하나님은 그런 죄인에게도 자비를 베푸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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