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여행 단상


백성호 목사(부산항도교회 원로)


얼마 전 구라파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정은 초행이거나 이전에 잠시 스쳐 지났을 뿐 이어서 아쉬움이 남았던 곳들이었다. 기독교 2천년 역사의 문화유산이 살아 숨쉬고 있고 세계적 유행의 산실들이 포진해 있는 서 구라파 권을 여행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나들이로서 은퇴를 하고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원로에겐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찬란한 기독교적 유산이 자리 잡고 있는 명소마다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은 때로는 가슴 벅차오르게 했지만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옛적의 신앙적 정서는 간곳없고 사방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밀리고 밟히는 어지러움과 소란 속에서 보낸 일정들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경험들이었다. 탁한 공기와 소음의 인간 멀미뿐 아니라 성경적이고 신앙적이어야 할 명소와 유물들이 우상화되고 예술이 되고 상품화 되었기에 구도형 순례자들에겐 탄식을 자아내게 했기 때문이었다.
1년에 5억이 넘는 관광객들이 몰려온다는 런던 파리 로마 등에 입성할 때에 현지 가이드들은 우리가 역사를 되돌려 200년, 400년 2000년 전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은 지금도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간다는 뜻이었겠으나 그 곳들은 이미 신앙적 정서나 역사의 향기는 퇴색된 지 오래되었고 수구와 복구를 고집하는 각종 중세기형 건물들과 낡고 때 묻은 유물들이 즐비한 전시장에 불과했다.
독일이 자랑하는 아우토반을 달리다가 낡은 목조건물 휴게소에 들렸을 때 대소 간에 화장실을 이용할 때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 일이나 뮌헨 근처의 두엄냄새가 나는 단층 숙소에 들어갔을 때 너무나도 서민적인 침대와 고장 난 작은 구형 TV, 불편한 욕실 등과 런던에서의 3류 학교 기숙사 같은 침실에서 잠을 청해야 했던 것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먹은 차가운 빵과 맛없는 커피는 씁쓸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국토가 한국의 6배 가까운 넓은 땅을 가진 프랑스 파리의 호텔은 문을 열면 무릎에 부닥치는 좁은 침대가 방을 다 차지하고 있어 불편하기 짝이 없었고, 좁은 욕실 벽에 부착된 샤워기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부닥치는 소리에 옆방 L 장로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사람이 누구요?’하고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로마 변두리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의 숙소에서는 아침식사가 봉지에 든 빵과 커피가 나왔다. 그래도 동구라파 쪽에는 슬라이스 햄이라도 내놓았었는데 서구 쪽에는 고기나 과일, 채소 따위는 구경도 못했다. 나그네의 서글픔을 느끼며 관광대국으로 배가 불러진 이 나라들이 이방인들에게 진저리를 느끼며 짐짓 푸대접을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싸구려 여행사를 택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여행경비가 비싼 여행객들도 같은 숙소와 같은 식사를 나누며 푸념하는 소리를 내었으니 이쪽 여행은 대동소이한가보다. 그나마 교포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은 한식과 기내식이 적잖은 위로를 주었다.
외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입에서 한국이 최고라는 말과 지상천국이라는 탄사는 빈말이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TV기자의 질문을 받은 주한 이탈리아 대사가 이탈리아와 구라파는 수구와 복구에 몰두해 있는 반면 한국은 옛것도 알뜰하게 챙기며 새것을 추구하는 놀라운 나라라고 한 말은 사실인 것 같다.
고국 땅을 다시 밟았을 때 눈에 띄는 어느 것 하나 새롭고 자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구라파 여행 소감은 유감으로 남지만 여행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누리는 것들의 소중함과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201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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