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교수)
한국에서 개 교회의 역사를 편찬하는 일이 유행처럼 되었다. 교회 100년사를 출간하는가 하면 50년사를 펴내기도 하고, 어떤 교회는 30년사 혹은 20년사를 편찬하기도 한다. 필자도 여러 교회로부터 교회사 집필을 요청받은 일이 있고, 또 여러 교회의 역사편찬에 대해 자문해 준 일도 있다. 부경역사연구회 운영위원이자 개교회사 수집가이신 최병윤 선생에 의하면 현재까지 출간된 1945년 이전에 설립된 교회의 역사서만 해도 약 600 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교회 통사만이 아니라 연합기관이나 개별 교회가 해 기관의 역사를 편찬하고 지난 역사의 자취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며 동시에 권장할 만한 일이다.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고, 목격자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앞서 걸어간 이들의 발자취는 후일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조선후기의 문인 이양연(李亮淵)은 “눈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도 바른 길로 가야하는 이유는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이후일의 이정표가 될 것(踏雪夜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廷)이라고 노래했을 것이다. 비록 개교회의 역사라할찌라도 그것은 한국교회사의 일부이고, 한국교회사의 범위를 축소시켜 미시적(微視的)으로 헤아려보는 것은 거시적으로 한국교회의 역사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작은 사회의 제 관계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큰 사회를 이루듯이 개 교회의 역사가 조합을 이루어 한국교회사를 구성하기 때문에, 개별 교회의 역사 또한 역사연구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재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개 교회가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왜 역사를 편찬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근원적으로 질문해야 할 것은 역사를 편찬하고자 하는 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역사 편찬의 동기가 무엇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를 편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편찬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인식이 있어왔다. 첫째는 헬라적 역사편찬인데, 헤로도투스로 대표되는 이들에게 있어서 ‘역사’는 인간행적의 기록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서 역사편찬의 동기는 ‘인간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것이었다. 이 점은 헤로도투스(484-425BC)의 경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페르시아 전쟁을 취급한 『역사』(Historia)에서 “헬레네인들과 야만인들의 위대한 행위와 업적이 덧없이 잊혀지지 않게 하는 것”이 역사기술의 동기라고 했다. 문제는 잊혀지기 쉬운 ‘인간의’ 행적이었다. 투키디데스는 때로 우연적인 작용을 인정했지만, 그에게 있어서 역사형성의 힘은 ‘인간’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해했던 순환론적 역사인식도 따지고 보면 역사 진행을 ‘인간이’ 겪는 삶의 과정에 따라 인식한 측면이 있다.
역사 편찬의 또 한 가지 형태는 히브리적 인식인데, 히브리 역사가에게 있어서 역사는 단순한 인간행적의 기록이 아니었다. 도리어 인간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였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가운데서 어떻게 일해 오셨는가 하는 점은 이들의 중요한 관심이었다. 지상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은 역사 형성의 기초였다. 따라서 인간을 도덕화하지 않고, 인간의 악함과 약점이 그대로 노출된다. 이런 입장을 발전시킨 인물이 어거스틴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실현과정이었다. 따라서 역사편찬은 ‘인간이 행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악함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통하여 일하신 ‘하나님’을 드러낸다. 인간의 행적을 후세에 남기자는 것이 역사 편찬의 동기가 아니었다. 도리어 인간의 한계와 약점을 이용하시면서 일하셨던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추적하는 것이 역사 편찬의 동기였다.
오늘 한국교회가 펴낸 개 교회사를 보면 하나님과 지난 역사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 없다. 우리의 벗은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이를 통해서도 후손들의 이정표로 삼겠다는 용기가 없다면 역사 편찬은 자화자찬이 될 수 밖에 없다. 교회사를 편찬하면서 우리의 행적을 드러내고, 사람을 칭송한다면 그것은 감동을 줄 수 없다. 도리어 우리의 부족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서 일하신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드러낼 때 역사 편찬은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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