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표 목사(서울 서초동교회 목사, 본보 논설위원)
나의 고향은 산과 들과 바다가 있어 경치가 아름답고 농수산물이 풍족한 변산반도다. 김제 만경과 맞닿은 동진, 주산, 행안 평야와 바지락과 백합조개 꼴뚜기 같은 수산자원이 풍족한 곳이다. 사찰과 명승지와 기암절벽, 그리고 깡깡나무, 미선나무, 후박나무, 호랑가시나무 같은 희귀식물의 군락도 있다. 옛 사람들은 ‘평안을 붙잡는 곳’이라 하여 부안(扶安)이라고 이름 하였다. 이 고장 출신 중에는 조남철 씨를 비롯하여 바둑 기사(棋士)들이 많은데 프로 기사들의 단을 합하면 50단 쯤 된다고 한다. 또한 이 고장 출신의 문인이 많은데 약 50명의 시인이 있다. 그래서 가끔 모이는 부안문학회에 명기(名技) 이매창(李梅窓)의 시 ‘이화우 흩날릴 제....’의 첫 자를 딴 <梨花雨 同人>과 주로 신성정씨의 제자들로 조직된 <夕汀 文學會>가 있다. 그런 저런 일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운치 있고 맛깔스런 하루를 보낼 냥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그 곳은 다시 가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다. 밤 새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선동적인 노래와 단발마적인 구호 때문에 우리는 계획 된 행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잠도 잘 수 없었다.
육지에서 100리쯤 떨어진 곳에 왕등도 라는 섬이 있는데 그중 바위로 된 작은 섬에 방패장을 만들기로 군수와 군 의회에서 결의를 하여 반대 데모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정된 숙소에서 선잠을 자고 헤어진 후 내가 자란 마을을 들렸는데 그곳은 읍에서 본 정도가 아니었다. 방패장을 만들면 핵 물질 부작용으로 대대손손 장애인이 되고 소, 돼지, 닭 같은 가축도 성한 것이 하나도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고…. 반대와 찬성자 간에 의견이 맞지 않아 이웃 간에 적이 되고 형제간에 원수가 되어 있었다, 기가 막혔다. 준비 없이 갔지만 울진, 고리, 영광의 예를 들며 안전하니까 절대로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에서 우리 같은 선전원을 보내어 주민들을 억지로 설득시켜 방패장을 유치하도록 회유하고 있다고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쓸쓸하게 돌아서 상경하는 머리에는 만감이 교차 되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만들 때 매머드 국회의사당은 전력만 소비할 뿐 전혀 불필요한 것이라고 얼마나 반대했던가? 경부고속도로를 만들 때 젊은이의 피를 팔아 도로확장을 한다고 얼마나 반대했던가? 광주 5. 18 때 상황을 정확하게 보도하지 않는 신문사 방송국은 불태워야 하며, 산업 역군들을 묶어 놓는 향토예비군 중대 본부는 때려 부셔야 하고, 소시민의 혈세를 수탈해 가는 세무서는 불태워야 한다고 얼마나 날뛰었던가?
이승복 군의 “공산당은 싫어요” 하는 말은 신문기자가 만든 말이고, 김현희의 KAL기 사건도 조작이며, 인천상육작전을 한 맥아더 동상은 끌어 내야하고, 미군기지는 평택에도 지을 필요 없이 아예 철수해야 하고…. 천안함은 조작된 사건이고…. 그렇다면 무엇이 조작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은 누가 되었던 상관없다. 국가를 위하여, 지방을 위하여, 그리고 교육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면 된다. 여기에 어찌 승자와 패자가 있단 말인가? 국민들은 오직 편안함을 기대할 뿐이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 6. 25 동란 60주년이 되었다. 그 때 태어난 아이가 환갑(環甲)이 되었고 20대 청년이 80고령(高齡)이 되었다.
내가 몇 년 후 다시 고향을 찾았을 때 고향 사람들은 “그 때 하라고 둘 걸 그랬나 벼. 우리 군에 수백억 원을 지원 받을 수 있었다는디”라고 하였다. 세월은 빨리 지난다. 놓친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덧 없이 흐르는 젊음이 아쉬울 뿐이다. 그리운 내 고향은 어디인가? 그래서 이 땅 위엔 고향이 없다고 하였던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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