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목사(수정로침례교회, 부산기윤실 사무국장)
성 어거스틴이 어머니의 신앙과 기도를 거부하고 마니교로 귀의한 것은 두 가지 때문이었다. 하나는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이 정녕 존재한다면 도무지 악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과 학문적인 관점 때문이었다. 성경은 그다지 과학적이지 못하며 학문적으로 열등하다고 보았다. 그에 비해 마니교는 악의 문제에 대해 말끔한 대답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 그럴싸하게 보였다. 그러나 결국 해답을 기독교 안에서 발견하였다. 요컨대, 어거스틴에게 기독교는 고통하는 세상의 구원인 동시에 의문투성이 세상의 진리이었다.
오늘날의 교회는 과연 어거스틴과 같은 구도자에게 세상의 고통에 대한 대답과 위안의 손길이 되고 있을까?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예기치 못한 고난에 직면한 이들이 자신의 아픔을 성찰하고, 극복하기 위한 동반자이자 구원자로 교회를 떠 올릴까? 극한의 고통 때문에 신앙을 등졌지만, 종국에는 회심하게 만드는 신앙의 신비를 교회가 갖고 있을까? 이것이 나의 물음이고, 대답이 영 시원치 않다는 것이 나의 고민이다.
80년대 대학은 몸살을 앓았다. 80년 광주가 안긴 물음과 남긴 상처의 환부는 실로 깊었다. 착하디착한 신자였던 젊은이들이 신앙을 많이 잃었다. 정확한 통계나 조사가 아니라 다분히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운동권 학생의 절반 이상은 기독교인이었다. 상당수가 독실한 신앙으로 자랐으나 변했다. 그들을 구분하자면, 고민하는 성도, 냉소적인 명목상의 신자, 적대적인 무신론자나 비종교인들이다.
왜 기독교인들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한때 기독교인이었던 이들이 유독 운동권에 많을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위험한 학생 운동에 뛰어들게 했으며, 복음을 벗어던지게 했을까? 우리가 그간 자라면서 교회에서 배웠고 들었던 복음의 내용은 복음에 합당하게 살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되고, 그리하여 이웃을 위하여 내 한 몸을 십자가에 드리는 것이 제자의 길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바로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역사와 민족을 고민하게 만들고 참여하게 했다.
그러나 그렇게 했던 교회가 실제로는 사회 현실에 무감각하고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강자와 부자의 편이고 약자와 빈자를 홀대한다는 아픈 사실에 당황하고 당혹스러웠다. 그 실망감이 한국 사회의 왜곡과 질곡에 대한 대답을 마르크스가 준다고 믿게끔 만들었고, 무엇보다 기독교가 무능하거나, 아니면 장애물로 인식하도록 했다. 기독교로는 이 사회의 악과 고통을 경감할 수 없다는 결론에 친구들은 도달했던 것이다.
복음에 합당하게 살라고 설교했기에 그렇게 살려고 했는데, 정작 그렇게 살려고 하니 교회는 그들이 서 있을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 한때 한국교회는 아픈 자들이 제일 먼저 찾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교회라면 질색하고 외면한다.
하지만 떠나갔던 어거스틴이 결국 돌아왔듯이, 우리 시대의 어거스틴들 또한 되돌아올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복음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때의 교회는 로마 제국 하에서 노예들의 종교였고, 바로 그러했기에 로마를 변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가 마음 상한 자를 보듬지 않는다면 미래의 어거스틴은 계속해서 교회 밖을 떠돌 것이다. 이제 교회는 결정해야 한다. 어린 어거스틴을 만들고는 계속해서 내쫓을 것인지, 그들이 자라 어른 어거스틴이 되는 것을 볼 것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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