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표 목사(서초동교회 담임)
각자의 명의(名義)나 신분에 따라 국가, 민족, 사회, 가족, 직장에서 지켜야 할 도덕적, 인륜적, 법적, 사회적 도리를 명분(名分)이라 한다. 명분은 공감성과 타당성이 있어야 하고 진리가 내포되어 있어야 하고 영구성이 있어야한다.
명분을 귀히 여겼던 선현들은 명성이나 물질이나 이득보다 절의(節義)나 실리(實利)를 더 중요시 하였다. 그리고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큰 명분(名分)을 지키려고 하였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지 명분의 함량이 점점 빈약해지더니 내용 없는 겉치레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명분만 있으면 내용이 부실하고 본의가 오도(誤導) 되어도 피차 공인하며 넘어 가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작금 국민의 머리인 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법부와 법조계 심지어 교회에서 까지도 명분만 있으면 내용이 부족해도 그냥 간과하는 석연치 않은 모습을 보게 된다.
현 정부의 4대강 살리기와 세종시 개정안과 녹색운동이 정권 연장이나 정권 창출을 위한 캠페인이 아닌 국가 백년대계가 되기를 바라고, 이것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與) 야(野)가 명분을 도출 해 내어 국민의 공감대(유권자의 표)를 사려고 하지 않기를 바란다.
출마자들은 지역과 국가발전을 위하여 자신은 얼마나 헌신하고 희생하였는가를 다투어 공적으로 내 놓을 것이고, 아직 그것도 없으면 또 속빈 강정 같은 공약을 남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야말로 소외된 백성의 가장 착한 이웃임을 자청하고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허울 좋은 명분에 매번 속아 넘어 가는 국민들이 안타깝다.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은 ‘국민의 가장 절실한 권익 보호를 위하여’ 발 벗고 나서서 입씨름을 하고 여의치 못하면 육탄 대립도 불사하여, 또 좀 과격하게 보여야 그 공로(?)로 차기 공천을 따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법기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과 정부의 간섭 같은 것은 일체 받지 않고 엄정 중립을 지키는데, 자신은 가장 선량한 법 집행자임을 명분으로 내 세우며 사정의 칼을 사정없이 휘두를 것이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에도 각 교파 총회장과 교회 단체장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선한 자임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선거 때 물질 살포나 물질 공약 등 맑지 못한 후론 때문에 교인들을 실망시키고 전도의 문을 막은 일이 많았다. 지도자의 세습과 지도자의 추문 혹은 지도력의 부족 때문에 한국 교회는 엄청난 손해를 보아왔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십일조 하지 않음을 책망하시지 않았다. 안식일을 안 지키거나 교인으로써 책임을 다하지 않음을 책망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우리보다 헌금을 잘하였고 안식일을 잘 지켰다. 다만 명분만 내 세운 형식주의 인본주의가 문제였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십일조와 각종 헌금)는 철저히 드렸지만 율법만 더 중요하게 여겨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고 하셨다. 안식일을 형식적으로 지켜 거룩을 잃었다고 하셨다. 제사를 번폐스러운 것으로 여김을 가증히 여겼다. 기도 안함을 책망하지 않고 공개성에 치우치는 기도자의 자세를 책망하셨다. 금식할 때는 세수를 깨끗이 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라고 하셨다.
로마가톨릭은 세속의 왕 위에 교황이 존재함으로 세속정치는 교회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으나 칼빈은 주님의 보이지 않는 통치와 세속의 권세를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교회는 세상의 핵(核, Cor)이다. 육체는 영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므로 영이 잘 되면 모든 육이 잘 된다. 영이 맑지 못한데 어찌 육이 맑아지기를 바라겠는가? 명분이냐? 실리냐? 그것 보다 중요한 건 믿음이다.
죽어버린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이라는 고승이 세상에 모든 것을 주고 갔다고 흠모하는 판에 우리는 무엇을 명분으로 교회를 지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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