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목사(수정로침례교회)
주보가 버려지고 있다. 예배를 마친 다음 예배당 풍경은 낙엽이 뒹구는 가을 거리와 다르지 않다. 전도지가 수북이 쌓여있는 길거리와 흡사하다. 전도지야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펴보지도 않고 곧장 쓰레기통에 들어가거나 길에 냉큼 버리는 것쯤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자. 허나, 주보는 상대는 성도이고, 장소는 예배당이다. 사정이 전혀 다르다.
몇 가지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하나는 아예 만들지 않거나, 다른 하나는 재생용지 사용이다. 다음은 주보 용도를 변경 또는 다변화이다. 예배 순서와 교회 소식 알리기 외에도 설교 요약, 성경공부나 구역이나 목장모임 공부를 싣는 것이다. 여기에 칼럼도 추가하면 좋겠다.
칼럼의 유용성은 참 많다. 우선, 교인들과의 훌륭한 소통 수단이다. 현대의 교회 구조와 질서 하에서는 목사와 교인들 간에 얼마간의 거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관계를 서먹서먹하게 만들고, 원활한 의사소통의 부재로 조화를 이룬 화음보다는 불필요한 잡음과 쓸데없는 소음이 생긴다. 이런 일을 사전에 차단하고, 매끄럽게 하는 윤활유가 칼럼이다.
목회자의 실수나 약점을 스스럼없이 적으면 흉이나 허물이 되지 않고 똑같은 사람으로 이해하면서도 솔직함과 고백하는 용기로 인해 되레 존경하고 좋아한다. 교회가 중점으로 삼고 있는 가치나 사역을 찬찬히 설명하면 광고 시간에 말로 하는 것보다 효과나 감동도 크다. 또한 정확하게 전달된다. 같이 들어도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설교나 광고는 의도와 달리 역효과와 역풍도 낳는다. 이때는 말로 할 때가 아니라 글을 쓸 때다.
둘째, 교육과 전도의 수단이 된다. 나는 교인들과 나눈 대화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칼럼으로 주로 쓴다. 내가 한 성도에게 해 주었던 이야기는 기실 다른 성도들 또한 들어야 한다. 교우가 물었던 의문은 그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궁금해 하기 마찬가지다. 글로 쓰면 한 번의 수고로 다른 많은 교우들에게 유익을 끼치게 된다.
전도에도 요긴하다.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학교의 김광성 목사는 주보에 성경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처음에는 오해하거나 잘 모르는 성경을 짚어주면서 삶과 구체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글을 썼다. 최근에는 구약 전체를 개관하는 짧은 글을 쓰고 있다. 이 주보를 전도 대상자들에게 보낸다. 그러니까 주보 칼럼으로 교인 양육도 하고, 출석하지 못한 이를 심방하고, 구도자들을 전도한다.
셋째, 글쓰기 연습이 된다.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많이 읽고 써야 하는 목회자에게 성서와 독서는 능력이고 생존이고 희락이다. 설교나 강의 교안과 교재를 만든다. 하여, 글을 잘 쓰고 싶은 것이 목회자들의 공통된 바램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노가다에 가까운 고된 노동이면서도 대학교수 저리가라 할 만큼의 고상한 사역이고, 예술가만큼이나 창조적인 작업이다. 힘들고 쉽지 않다.
글쓰기 훈련과 필요성으로 보자면 설교문 작성이 시급하다. 그러나 설교문은 분량이 길다. 때문에 조금 짧은 글로 먼저 갈고 닦아야 한다. 1km에서 시작해서 5km, 10km 달리기가 능숙한 다음에 마라톤에 나서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박사 논문도 쓰고, 책도 한 권 출판했지만, 주보 한 면을 매주 채우기가 퍽 힘들었다. 꼬박 1년을 쓰고 나니 글쓰기가 익숙해졌다. 원고지 10장 쓰는 힘이 길러지니까 수십 장의 논문이나 수백 장의 책 쓰기가 거뜬해졌다.
마지막으로 책 한 권 쓸 수 있다. 주보에 몇 년을 꾸준히 쓰다보면 글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것을 일관된 관점이나 흐름으로 묶거나, 개중에 특정한 주제의 글이 많아지면 따로 모은다. 책 한 권 쓸 계획을 세워 연재하는 것도 방법이다. 내 책, ‘가룟 유다 딜레마’와 ‘예배, 인생 최고의 가치’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전자는 교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고, 후자는 예배를 교육하고 훈련하기 위해 썼고, 둘 다 처음부터 출판을 의도했다.
많은 목회자의 로망이 책 쓰기다. 주보 칼럼 쓰기가 그 꿈을 이루어줄 중매쟁이다. 목사들이여, 주보에 칼럼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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