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희 목사 정론

성 니콜라스의 슬픔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대신 그 자리를 산타가 차지한다는 탄식이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기독교 내에서는 ‘산타 버리기, 예수 찾기(No Santa, Yes Jesus)’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산타 문화는 곧 예수정신의 반대 문화요, ‘나눔과 섬김’ 보다는 ‘자기만족과 자기욕망의 극대화’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탄절의 축출대상 1호가 되어버린 산타는 알고 보면 성탄의 정신을 가장 잘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천 팔백년 전인 서기 이백팔십 년의 이야기입니다. 산타클로스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에 전해지는 성 니콜라스 주교가 어느 몰락한 귀족의 집 앞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딸이 셋이나 있었는데 과년한 나이임에도 지참금이 없어 결혼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고민하던 성 니콜라스는 그의 집 안으로 자신의 지갑과 가방, 한 조각의 금을 각각 던졌는데, 이것이 굴뚝 옆에 마르라고 걸어 둔 세 자매의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 양말의 유래가 되었고, 산타클로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맨 처음 산타클로스는 ‘섬김과 나눔’의 성탄정신을 그대로 보여주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사탄은 이것을 아주 교묘하게 이용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섬김과 나눔’을 준 성 니콜라스를 보는 대신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은 ‘몰락한 귀족’을 보게 한 것입니다. 즉, 성탄절이 되면 누군가에게 ‘섬김과 나눔’을 주는 삶을 살기 보다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가지기 위하여 욕망의 양말을 걸어두고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삶을 살게 한 것입니다. 사탄의 이러한 전략은 보기 좋게 성공하였고, 급기야 세상은 온통 자기 선물, 자기 기쁨 챙기기에 정신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산타클로스인 성 니콜라스의 슬픔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아야 할 것은 보지 않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고 살아감으로 자신의 이름을 빼앗겨 버린 성 니콜라스의 슬픔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 니콜라스와 함께 성탄하신 예수님 또한 슬퍼하고 계십니다.
금년 성탄절에는 우리 모두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산타클로스가 되어 보면 어떨까요? 받을 축복과 기쁨을 셈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줄 사랑을 생각하며 흐뭇해하는 성탄절이 되게 하면 어떨까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성탄의 정신인 ‘섬김과 나눔’을 실천할 일들을 한 번 세워 보면 어떻겠습니까? 모두 다 들 뜬 기분으로 성탄절 이브를 보내고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있을 수도 있는 성탄의 새벽, 옛날 새벽 송을 돌던 마음으로 잔잔한 성탄의 노래를 부르면서 더렵혀진 세상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끼리 모여 흥청망청 노는 대신 어려운 이웃을 찾아 함께 예수님 t생일 축하잔치를 조촐하게나마 여는 일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이름을 잃어버린 성 니콜라스의 슬픔도 조금은 씻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성탄하신 예수님께서 비로소 생일다운 생일을 맞이했노라고 조금은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200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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