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시 섭 변호사 (Seeseop@Choeunlaw. 조은법률사무소)
지난 주 한 저녁모임에서 대학 총장님의 인사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인사말씀을 시작하기에 앞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시더니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제가 영시 하나를 읊어도 되겠습니까? 전 영문학도가 아니지만, 날로 메말라 가는 저의 정서를 생각하며 얼마전부터 영시를 시간이 날때마다 읊조리고 있습니다.” 그 분이 읽으셨던 시는 엘리옷(T. S. Elliot)의 ‘The Waste Land‘, 즉 ‘황무지‘의 첫 소절이었습니다. “아!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 라일락을 키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약간의 생명을 길러주었다.” 학생시절 한 번쯤은 읽었고, 또 한 번쯤은 외우기를 시도했을 법한 시였는데,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 시를 들으리라고 생각지 못해서였는지 전 너무나 달콤하기까지한 시낭송에 깊이 푹 빠져버리고 말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제가 찾아본 시의 해당부분은 ‘죽은 자의 매장‘이라는 다소 섬뜻한 소제목이 붙여진 장시의 첫 부분이었습니다. 바로 그 4월이 지나갔습니다. 올 4월의 가장 슬픈 소식은 버지니아공대 총기사건이었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살인자‘가 한국인이라는 이유에서만을 아닐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그 누군가도 소외되고, 사랑받지 못하고, 철저히 외면되어 불특정 다수인을 향한 분노를 키우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암울한 기분을 끝내 돌이켜주지 못하고, 제주도에서는 한 초등학생의 주검을 발견하고서야 4월이 막을 내렸습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이라곤 ‘한국인‘이라는 것일테지만, 전 그보다 사건 깊숙히 뿌리 박은 ‘소외‘를 봅니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세상이 온통 도시화되면서 우린 익명성의 시대를 살게 되었습니다. 우린 경제적인 풍요를 얻은 대신, 우리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이름‘은 이제 명목에 불과하고, 공허한 딱지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속에 나타나는 많은 인물들의 이름은 곧 그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익명성의 시대‘에 우린 진실한 사랑에 목말라 합니다. 깊은 칭찬을 그리워하고 돈, 명예, 권력과 결부되지 않은 ‘진심‘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린 너무나도 익숙해진 ‘익명성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야 맙니다. 왜냐하면, 우린 우리 ‘자신‘을 드러내 놓을 용기가 없고, 배짱이 없고,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4월은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시인의 ‘죽은 자를 위한 매장‘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위선으로 가득 찬 삶이지만, 그건 남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시인은 고백합니다. ‘명목‘에 불과한 가면을 벗고 언제쯤 우린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고, 솔직한 ‘우리‘와 껴안게 될까요. 그러나 5월은 희망의 달입니다. 4월의 죽음과 부활이 5월의 신록 속에 되살아오기 때문입니다. 익명성을 벗어버리고, 진솔한 자기모습을 나누면서 우린 부활의 주님을 진정으로 우리의 주인으로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 주변에 혼자서 외로이 눈물지으면서 어두운 방에서 외로움과 분노를 씹고 있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쇼생크탈출‘의 한 대사가 기억납니다. “희망이란 좋은 거예요. 가장 소중한 것인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런 것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우린 죽음을 넘어선 소망을 버지니아공대 캠퍼스에서 보았고, 예수님의 무덤에서 보았습니다. 5월이 희망의 달이 되기 위해서는 4월의 익명성을 벗어버리고, 우리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심함을 버리고, 냉정함을 누그러뜨리고,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나 자신을 찾길 소원합니다. “내 혼을 살게 하소서”(시119:175) 4월의 부활을 5월에 체험케 하소서. 아멘. 시내산 버지니아 참사쇼크 김 광 영 장로 서울중앙교회 시무 전 숭실대학교 사무국장 잔인한 4월, 버지니아공대에서 일어난 잔인한 사건, 총기난동에 의한 참사는 세계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때 아니게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범인이 한국인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10살 때 부모를 따라 이민을 간 영주권자라 해도 한민족임으로 더욱 그러했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현대사회에 동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럴 것 무엇이냐고 말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미 현지 교민들이 불안해하였고, 유학생들이 기숙사를 떠났다. 이에 대하여 미국은 범행자 개인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걱정을 안심시켜 주고 있었지만 우리는 소수민족이라는 핸디캡을 가슴속에 간직하였기에 선뜻 피해의식을 던져버리고 안도할 수없는 것도 현실이었다. 물론 문화적 차이도 있지만 만약, 범행자가 영국이나 유럽인이었다면 어떻게 보았을까?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라고 이 사건의 전말을 보았을지 모르나 우리는 좀 달랐다. 그랬음인지 매스컴들도 연일 무거운 짐으로 보도했었다. 혹, 또 다른 사태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들었다. 수년전 LA 한국인 상점 방화사건으로 놀란 적이 있기 때문에 다민족 국가에서 인종문제는, 특히 소수민족의 불편함은 완전 치유가 불가능할 것 같아 더욱 그랬다. 정부도 해외교민들의 안전과 국익에 관련된 문제와 연결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문제의 수습에 도움이 되는 곳에는 전 방위 체제로 접근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재미교민사회가 치유를 위해 방안을 찾고 한인교회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어 고무적이었다. 뿐이랴! 과잉대책은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하고 희생자 추모를 위한 촛불집회도 자제하고 표나는 행사도 억제하는 지혜를 보였다. 거리감이 있는 이곳과는 달리 현지에서 보는 그 참혹함과 불안과 슬픔에 대한 애도와 위로와 빠른 회복과 안정을 찾는데 협력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소식에 정말 반가웠다. 미국이민 동포들은 대개 경제적인 이유도 들지만 다수는 자녀교육을 위하여 자신들의 희생을 각오하고 교육환경이 좋은 곳을 찾아 간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참담한 사건을 접하면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그분들의 가슴은 어떨까? 그리고 교민사회와 유학생들의 충격은 어떠했을까? 따져보면 나라의 책임도 크다. 경제상황은 물론 교육환경과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밝은 비전을 주지 못한 것이 그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제 우리의 사회도 다시보자. 우선 삶의 가치관에 대한 바른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모든 것을 국가와 교육기관들이 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정과 사회가 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풍토를 조성하여야 한다. 특히 사회생활의 규범과 자신을 다스리는 훈련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가치관은 순수와 정직과 지식과 건강한 명예보다 부를 통한 신분의 상승을 가르쳤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병리는 빨리 치유하여야 한다. 누가 하겠는가? 교회뿐이다. 우선 마음의 평안과 부와 욕망에 대한 만족도를 조절하거나 낮추도록 인식시키는 것과 그 사용법을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 만족도를 조절하지 않고 계속 높은 데 둔다면 위축되고, 절망하게 되고, 소외감을 느끼고 증오하고, 다는 아니지만 보복심리가 발동하여 무차별적 증오심이 폭발할 것이다. 이 참사는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도록 어디선가 모방 범죄가 발생할지 모른다. 또 범죄자는 범죄자일 뿐 절대 영웅인 것으로 착각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 가정과 교회는 유념하고 가르치자. 역사는 그 변화와 전환을 위하여 희생양을 찾는 것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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