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금의 환향

오스트리아의 여걸 하면 18세기말에 여황제로 국위를 떨치고 중앙집권의 틀을 놓아 명성을 떨치던 마리아 텔레지아와 그의 막내딸로 프랑스의 루이16세와 정략적인 결혼을 했으나 호화 방탕한 반혁명적 생을 누리다가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진 마리아 앙투아네트가 생각나지만 오늘은 전혀 이미지가 다른 차원의 두 성녀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들은 28세의 꽃다운 청춘의 나이로 한국의 한센씨병 환자들의 정착촌인 남해안의 낙도 소록도에 와서 43년간의 긴 세월을 환우들을 돌보다가 70세 고령이 되자 본국 교단의 소환을 받고 지난해 말 떠난 마리아 스퇴거와 마가레트 피사레라는 수녀 간호원들이다.
베토벤, 슈벨트, 모차르트 혹은 요한스트라우스 같은 세계적 음악가들을 배출하였고 성탄절 때면 모든 사람들이 애창하는 찬송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작사·작곡가를 낳은 아름답고 정서적인 고국 땅과 사랑하는 혈육들을 떠나 낯선 곳 산설고 물설은 이국의 낙도 그것도 평생을 불치의 병마와 싸우며 고통하는 환우들을 찾아와서 치료해 주고 돌보며 따스한 정분을 함께 나누던 그들이 어느날 새벽 몰래 섬을 떠나 버리자 소록도 전체가 어안이 벙벙하도록 큰 슬픔에 잠겼다고 한다.
그들은 거의 한 평생을 세상에서 소외된 채 한센씨 병으로 고통 당하던 환우들과 희노애락을 같이하고 동고동락 해왔기에 차마 정을 떼고 떠나기가 어려워 공개적인 환송식을 가지지 않고 도망치듯 섬을 빠져 나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소록도에 도착할 때인 1960년대 초만해도 한센씨병은 잘 낫지 않는 고질병이었고, 또 나라 사정이 어려워 오스트리아에서 보내준 의약품과 지원금은 요양원 운영에 큰 힘이 되었다.
더구나 그들이 봉직한 부서는 말기 환자들을 보살피는 곳으로 43년간의 세월을 하루같이 곪아터진 환부를 장갑도 끼지 않고 만지며 약을 발라주어 환우들의 손발이 되어 주었다니 그 희생적인 사랑과 헌신의 봉사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 본국에서 보내온 생활비까지 환우들의 간식비로 쓰고, 귀가 환우들의 여비에 보태어 쓰도록 해서 그들이 소록도를 떠날때는 낡은 여행가방 하나씩만 가지고 갔다고 한다.
오늘날 같이 인정이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에 살면서 불우한 이웃의 고통을 잊어 버리고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들이야말로 주님이 보내어 주신 사랑의 천사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욱 놀라운 것은 환우들과 주민들에게 이별의 아픔을 주지 않기위해 사전에 예고없이 새벽에 배를 타고 섬을 빠져 나오면서 오히려 주민들을 향하여 ‘사랑하는 친구와 은인들이여’하면서 이제는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으므로 요양원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기로 하였으니 그동안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큰 사랑의 빚을 지고 떠나게 되어 감사할 것뿐이라는 편지를 남긴 일이다.
오늘 우리가 벽안의 오스트리아 출신 두 수녀의 아름다운 행적을 더듬어 보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혜택을 베푼 오스트리아 정부나 수혜를 입은 한국 정부도 그들의 선행을 결코 과소평가 하거나 잊어 버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이다. 우리가 바라는 작은 소망이 있다고 하면 그들이 도착한 어느 공항에 그들을 반기며 환영하는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천사의 목소리라고 하는 비엔나소년 합창단의 아름다운 화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였다는 어떤 정보도 귓전에 닿지 않고 있다. 한국의 매스컴들조차도 이런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다만 어느 이름 없는 교계신문 로칼란에 조금 언급되었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푸념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숨겨진 희생을 보상으로 여기고 논공행상을 거부한 오스트리아 수녀들에게 누가 될까봐 조심스럽기도 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엔 초라한 귀향객으로 보일는지 몰라도 머지 않아 당도할 하늘나라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직접 나와 맞아 주시는 금의 환향이 될 것이다.

백성호 목사
부산 항도교회, 본보 논설위원

200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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