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민주항쟁, 역사 앞에 정직하게 설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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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4월 13일 전두환 정권은 평화적 정권 교체란 명분을 앞세워 국민의 여망이던 직선제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4.13 호헌(護憲)조치‘를 선언했다. 반발은 뜨거웠다. 각계 각층에서 호헌 철폐를 요구하는 시국성명을 냈다. 박종철 고문살인을 규탄하고, 호헌 철폐를 요구하는 국민 대회를 6월 10일 대규모로 벌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6월 10일 밝았다. 6시 약속된 시간이 되자 거대한 함성이 도심을 울렸다. 구호는 ‘호헌 철폐, 독재타도’였다. 학생들이 먼저 나사고 시민들이 속속 동참하기 시작했다. 전날인 9일 시위 중 연세대생 이한열 군이 최루탄 파편에 맞아 중태에 빠졌다는 뉴스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규모는 급속도로 커지며 시위는 진행됐다.
그날 저녁 명동성당에서는 8백여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농성 투쟁을 시작했다. 6월 10일 밤부터 시작되어 15일까지 5박 6일동안 진행된 명동성당 농성 투쟁은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희망이었다.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그 희망의 파문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시민들은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던 사람들에게 성금은 물론 빵·음료수·의약품 등을 전달했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던 회사원들은 그 자리에서 가두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남대문 시장 상인들도 성당에서 농성하고 있던 학생들에게 옷을 보냈다.
이런 국민들의 거대한 힘에 전두환 정권은 놀랐다. 그리고 직선제 개헌 및 광범한 민주화 조치 등을 보장하는 ‘국민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진전을 위한 특별선언’(일명 6.29선언)을 내놓게 된다. 국민의 승리였고, 민주주의 승리였다.
6월 10일은 승리의 그 날을 기념하는 6.10민주항쟁기념일이다. 한국현대사에서는 빠질 수 없는 그 날을 돌아보며,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유익에 감사하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역사의 한 단면을 훑어보며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은 기독교인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6.10 민주항쟁의 과정 속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반문해보고 싶다. 아쉬움이 남는다.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명동성당은 많은 대학 청년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었다. 이 땅의 젊은이들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 선한 목자와 같이 양들을 지켰다. 하지만 우리 교계는 선한 목자와 같이 양들을 지켰는지 다시 한번 돌아봤으면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공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였는지, 죽고자 했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 앞에, 6.10민주항쟁의 역사 앞에, 교계와 교회는 죽고자 했는지 정직하게 반문하는 6월이 되길 바래본다.

201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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