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변혁하지 못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왜 세상이 변하지 않는가?” 우리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책임은 그리스도인에게 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야 할 우리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해결의 주체도 자신이다. 그러면 세상을 변혁하지 못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그 우리는 어떤 우리인가? 누구관대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고, 그분의 능력을 부여받고도 세상을 이다지도 제 멋대로 가도록 내버려둔단 말인가?
대게의 대답은 ‘이원론’에 물든 그리스도인을 지목한다. 복음의 알맹이는 그리스도의 주되심(Lordship)에 있다. 문제가 되는 우리는 세상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채, 개인의 내면적 영성이나 현실과 괴리된 초월적 공간으로 도피하는 우리이다. 회사에서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교회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무관한 것으로 왜곡된 경건이다.
또한 보다 본질적인 요인은 ‘혼합주의’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세상과 다른가? 아니면 세상을 닮았는가? 세상과의 분리라면 이원론이고, 세상에의 동화라면 혼합주의이다. 그 대답은 우리는 세상에 순응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보수적인 기독교의 정치적 발언을 보자. 정치 참여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기독교와 국익, 그것도 일부 특정 집단의 이익과 이데올로기와의 결합이 문제이다. 십자가와 태극기와의 일치도 모자라 성조기까지 함께 흔드는 장면에 아연실색했다. 자기 부인의 극진한 예수의 정신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간곡한 예수님의 명령도, 자기를 희생하면서 십자가를 지는 예수의 실천도 없고 그저 자신의 이해만 관철하려는 이익집단의 행동일 따름이다.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기’만 온통 교회에서 펄럭인다.
성경은 혼합주의를 염려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너무 깊이 연루되어 있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비아냥거림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다”는 말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이다. 슬픈 일이다. 현재 당면한 우선 과제는 ‘한국사회의 성시화’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복음화’이다. ‘죄 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한가?’에서 ‘죄 많은 이 교회로 충분한가?’를 고민해야겠다. 여전히 희망의 빛도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 교회를 사랑한다.

201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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