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정신과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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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전 우리 민족이 일제의 강점에 저항하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던 3·1절을 계기로 오늘은 기독교와 민족에 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혹자는 기독교는 보편적이고 세계적이기에 민족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종교는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좁은 견해이다. 거사의 중심인물 48명 가운데 24인이 기독교인이었다. 3·1운동에서 거의 절반 가량이 기독교측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당시에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3퍼센트에 불과했다. 3·1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기독교가 입은 피해를 보더라도 항일민족의식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오래 전에 읽은 책 하나가 생각난다. 안이숙 여사가 지은 ‘죽으면 죽으리라’이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 4장16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유대민족이 페르시아로 포로로 잡혀가서 억울하게 처형을 당할 순간에 페르시야의 왕비로 있는 에스더가 그의 사촌 오빠이자 후견인인 모르드개와 나눈 대화 속에서 나온다. 에스더는 자기가 벌을 받아 죽을지라도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왕에게 나갈 것이라고 결단하는 대답이 ‘죽으면 죽으리라’이다. 안이숙 여사도 이와 같은 일사각오로 일본 국회의사당에 가서 일제의 기독교 탄압을 고발했고 그 때문에 체포되어서 수감생활을 했다.
물론 그 뒤의 역사적 전개 속에서 한국 기독교는 점차 저 세상 주의적으로 되어 갔다. 그래서 결국은 종교와 정치,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의 분리가 교회를 지배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교회 이외 삶은 모두 신앙과 관련 없이 자기 편한대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에 옛사람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고 하는 위험에 쉽사리 노출된다. 그러다 보니 사회에서도 빛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역으로 교회 내에서의 삶에까지 세상의 모습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 이유는 우리는 교회에서 살기보다는 직장이나 가정 등 사회에서 사는 시간이 훨씬 많은데, 이 많은 시간을 신앙을 사용하여 살지 않다 보니 우리의 인격 자체가 불신앙의 모습을 띄우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도 우리 신앙에 다시 한 번 사회적이고 공적인 면모를 들여와야 할 것이다. 물론 신앙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이고 사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일 큰 계명으로 가르치신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이웃은 내 곁에 있는 사람 뿐 아니라 우리 민족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시대의 과제를 잘 읽고 민족의 미래와 역사에 책임지는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2008.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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