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부터의 탈출


한국교회는 성장신학에 의하여 눈부신 양적 성장을 이룩해 냈고, 그 성장신학은 축복신앙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성장을 뒷받침해준 축복신앙은 고난신학을 밀어내어 신앙의 깊이가 얕아지게 하고 신앙의 무게를 깃털처럼 가벼워지게 하였으며 온갖 병리현상을 드러내게 하였다.
한 사회를 주도하는 종교의 수준은 그 사회의 정신적 수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마련인지라 한국기독교의 이러한 병리현상은 한국 사회 전체의 정신적 깊이와 무게를 얕고 가볍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판단을 수용한다면 우리는 이쯤에서 축복신앙에 밀려난 고난신앙에 대해 철저히 검토하여 기초를 다시 다지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본다.
성경은, 하나님 창조사역의 궁극적 목표는 구원에 있고 구원은 축복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축복에로 나아가는 과정은 고난이며 그 고난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 필수과목을 이수하기 위하여 히브리인들은 이집트 바로의 학정 밑에서 시달려야 했으며 사십년간이나 광야를 헤매야 했고,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도 끊임없는 투쟁을 해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하나님이신 예수조차도 십자가로 상징되는 고난의 생애를 살아야 했고, 기독교가 서기 위해서도 수많은 고난을 겪어야만 했으며 수많은 순교자들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고난을 전제로 하지 아니한 구원이나 축복이 결코 있을 수없는 일이라는 것을 더 이상 어떻게 설명하라는 것인가?
그런데 물질 차원의 축복론은 고난이 축복의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되는 우를 범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고난이 축복에 거침이 되는 것으로 이해되게 되었고,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밀려나 점점 사라지는 결과를 낳게 하였으며 거짓 축복만 기승을 부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무엇인가? 신앙의 깊이가 얕아지고 무게가 깃털보다 가벼워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사회 전체를 여러 가지 병리현상에 시달리게 하였으며, 진정한 축복을 이루어 내지도 못하는 결과를 가져 오게 한 것이다.
이제, 이쯤에서 한국 교회는 대오각성 하여 잃어버린 고난신학과 고난신앙을 다시 살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종교의 자리에서 퇴출되는 경우까지 상정해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고난주간이다. 이 고난주간을 계기로 하여 잃어버린 고난 신앙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모든 강단에서 고난에 대한 설교가 풍성해져야 하며 모든 성도들의 신앙의 밑바탕에 고난신앙을 굳건히 다져나가야 할 것이다.

기독교사회책임 출범의 의의
대개의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될때 기독교는 서구 식민지정책과 더불어 전파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서구 제국주의의 일환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를 받았고 그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서구의 기독교를 실학파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의 기독교는 3.1운동처럼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의 중심세력으로 역할을 하였고, 한국민족에게 대단히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것이 한국에서 기독교가 오늘날 요원의 불길처럼 부흥한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그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였다.
7,80년대 유신과 권위주의 정부치하에서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한 것이 NCC를 중심한 교회였다. 민주화와 인권운동 또한 한국민족에게 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동안 복음주의권의 교회는 전도와 부흥운동을 열심히 전개하여 결국 교회의 큰 두흐름이 합력하여 교회성장이라는 열매를 거두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성장이 정체되어 있는 것과 한국의 1인당국민소득이 10년이상 1만불수준에서 정체되어 있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일까?
민주화된 정부가 들어서고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한국교회는 목표와 비젼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또한 한국사회는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급격히 좌로 기울어졌다. 그 단적인 예가 작년 맥아더동상철거사건이다. 맥아더장군은 대한민국을 공산화의 위기에서 건진 상징적 인물인데, 그의 동상을 철거하겠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는 시도가 아닐수 없다. 그와같은 극좌적 행동에 대하여 현정부가 단호하게 선을 긋지 않았다.
급격하게 좌로 기울어 사회의 중심을 잡는 중도세력이 약화되면 대한민국전체가 위기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제 새롭게 한국사회의 희망의 등불이 되며 선진국문턱에서 좌초할 위기의 대한민국을 바르게 견인해야할 중차대한 역사적 책무가 한국교회에 주어졌다.
기독교사회책임은 이와같이 대한민국의 중심을 바로잡고 선진화로 힘차게 나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사회에 바른 영향력을 끼쳐 복음전파의 유리한 상황을 전개하여 교회가 한국사회의 소망이 되게 하는 것이다.
4월, 부산에서도 기독교사회책임이 결성된다. ‘부산기독교사회책임’이

200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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