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절 행사가 시청 앞 광장과 종로에서 따로 열렸다. 시청 앞 광장에서는 반김반핵의 보수주의의 구호가, 종로에서는 반전반미의 세칭 혁신세력의 구호가 외쳐졌는바, 그 구호나 집회의 성격이 양극을 달리고 있어서 우려되는 바 크다.
돌이켜보면 1945년 8월 15일,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었을 때도 지금처럼 보혁이 서로 나뉘어 주먹질과 삿대질을 하며 억척스레 싸웠었다. 싸움은 북쪽에서는 혁신세력이, 남쪽에서는 보수세력이 승리를 해서 북은 혁신세력에 의하여 그리고 남은 보수세력에 의하여, 역사가 주도되어 왔으며 패배한 세력은 역사에 얼굴조차 내비칠 수가 없었다. 각각 판정승이나 판정패가 아니라 KO승 KO패로 싸움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런 죽기살기식 극단적인 싸움은 어제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다. 조선조의 사색당파의 싸움이 그랬고, 그 후 모든 정쟁이 죽거나 살거나 식의 싸움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러한 죽기살기식 싸움은 우리의 체질이 되어 버린 듯 싶다.
오늘 시청 앞 광장과 종로의 광복절 집회에 섬뜩한 느낌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우리의 잘못된 체질이 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며, 이에 따른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보수 세력은 혁신세력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한다. 돌이켜보면 남쪽에서의 보혁 싸움은 보수세력의 완전 승리로 끝났었고, 그 후 혁신 세력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특수한 분단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바람직한 구도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혁신세력의 목소리가 생소하게 들리고 필요 이상으로 위험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많은 변화를 겪었고, 또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숙했으니 혁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역사를 발전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둘째, 혁신세력은 보수세력의 당혹감을 감안하여 충격을 줄이는 일에 힘써 주기를 당부한다. 문화충격이 없으면 발전이 없고 너무 크면 파괴가 오는 법이지 않는가. 이런 의미에서 적당한 속도 조절과 자제를 당부하는 바이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 어차피 통일은 필연적으로 올 것이고, 이념의 갈등 또한 숙명적으로 겪어야 할 일이라면 지금 우리가 연출하고 있는 보혁의 갈등 또한 필연성이 있는 것일 터인데 지혜롭게 겪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죽기살기식 싸움 말고 스포츠식 싸움을 싸우자고 제안한다. 권투는 링 안에서 축구는 축구경기장 안에서 하듯 국익을 생각하는 틀 안에서 싸우더라도 싸워야 하는 게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또한 완승이나 완패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남인이 세력을 잡으면 북인은 비로 쓸 듯 쓸어버리고 반대로 북인이 세력을 잡으면 남인은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는 그런 죽기살기식 싸움을 지양하고 6:4로 이기거나 4.5:5.5 쯤으로 지는 그런 싸움을 즐기자는 말이다. 전쟁은 말고 씨름으로 하면 어떻겠는가?
이 땅의 보수세력은 너무 오랜 세월 혁신세력의 입과 귀를 막았고, 이 땅의 혁신세력은 한반도에서의 특수상황 아래서 이 나라를 지켜온 보수세력의 입장을 너무 모른 체 했다. 이제 보수세력은 혁신세력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 제대로 된 보수가 되고, 혁신세력은 보수세력을 존중하는 기반 위에서라야 든든한 혁신세력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말기를 당부한다.
이런 의미에서 충돌 없이 양측 광복절 행사를 치러낸 것은 하나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일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