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광일 장로는 한국교회 판 세례요한


(732호에 이어)

△김광일 장로와 ‘가룟 유다 예찬’ 필화사건
경남중·고교시절을 보내고 서울대 법대를 나온 청년 김광일 집사와 경북대 법대를 나온 김상권 장로는 한때, 부산중앙교회에서 쌍벽을 이룬 엘리트 집사들이었다.
김광일 변호사는 영덕지원장에서 마지막 판사 법복을 벗고, 부산 부민동(과거 법원 앞)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사무실을 시작할 1979년 초여름이었다. 보수적인 신앙을 지닌 부산중앙교회(합동)는 부산노회 증경노회장이자 증경총회장을 역임한 노진현 목사가 시무하던 시기였다.
김상권 집사와 김광일 집사는 보이지 않는 라이벌 관계로 교회 안에서는 누가 교회지지를 받고 장로 피택을 받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한때 서울법대와 경북법대의 파워게임으로 교회 안은 어느 쪽에 줄을 서는지에 관심이 높았다.
김 변호사는 장로에 연연하지 않고, 상당히 사회 개혁적 인물이었다. 교회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신앙관을 가지고 예언자적인 메시지를 던진, 야성 넘치고 영적갈구를 하던 청년 집사였다.
김상권 집사는 경북 군위 농촌 집안에서 태어났다. 벽산 김인득 장로(JP의 사돈)의 영화사업에 뛰어들어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기업가 정신이 강한 청년 집사였다. 한 사람은 사회 개혁적인 인물이고 다른 한 사람은 물질로 교회건축을 많이 한 입지적 인물로, 이념적으로는 상반된 의사를 가진 두 인물이었다.
변호사 개업도 얼마 안 된 변호사 초년생이 이름을 널리 알리고 부산교계나 부산사회에 히트를 한번 쳐야 한다는 그런 인간적인 야망도 있었을 것으로 필자는 판단했다.
그 당시 지방지로서는 야당성이 강한 국제신문에 ‘국제춘추’라는 칼럼을 부탁받았다. 국제신문 문화부 기자 임방원 기자가 그 당시 부산 교계와 종교계 기사를 많이 다뤄 친분이 있었다.

△가룟 유다 예찬론을 게재한 김광일 집사를 징계해야 한다는 성토에 정면 돌파했다
국제신문 국제춘추 칼럼 란에 ‘가룟 유다 예찬론’을 게재했다. 이 칼럼으로 보수진영 합동교단이 발칵 뒤집어졌다. 고신 교단 역시 일개의 집사직 변호사가, 그것도 신인에 지나지 않고 신학도 공부하지 않은 변호사가 이런 이단같은 소리를 했으니 벌떼처럼 일어났다.
칼럼은 ‘가룟 유다 때문에 예수가 정치적으로 십자가 형틀에 처형되어, 오늘날 기독교에 악영향을 끼쳤지만 재정을 담당한 가룟 유다로 인해 십자가 구원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일대 공로자요, 훈장을 주기에 충분한 분이지만 죄책감에 자살한 똑똑한 인물’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룟 유다를 극찬한 것 같지만 그 시대상을 반영하여 세태를 풍자한 역설적인 글이었다. 당시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신군부에 조찬기도회나 열고 정권실세들에 기도해주고, 정권에 아부하는 반예언자적인 유신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하면서 정권과 종교가 유착된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역설적으로 비아냥거린 가룟 유다와 같은 인물들이 한국교회에 수두룩하고 건재해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액면 그대로 예수를 은 30에 팔았던 가룟 유다를 예찬했다면서 교회에서 징계해야 한다고 노회, 교단에 압력이 들어왔다.
부산중앙교회 당회는 집사징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긴급히 모여 의논했다. 그를 가르친 부산대 교수 출신 이현기 장로 등 그를 지지하는 장로 편과 반대하는 장로들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 김광일 집사에게 소명하는 기회를 주기로 하고 그 신앙의 본뜻을 파악한 후 처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 당시 ‘크리스챤신문’ 전면광고난에 ‘본인은 가룟 유다를 예찬하고 싶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처럼 군부에 밀착하여 아부하고, 협력하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역설적이면서 비유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쓰게됐다’고 해명했다. 그는 집사징계는 면하게 되었으나 자진근신하기로 했고, 사건은 일단락 됐다.
이것이 작은 불씨가 되어 반대파와 지지파들로 패가 갈라져 바로 부산중앙교회를 분리하게 되는 촉매작용을 한 것이다. 중구 미문화원 뒤편 부산중앙교회에서 분리해 나간 쪽이 지금의 새중앙교회의 시작이었다. 그때 나간 분들이 노진현 목사를 비롯한 지금의 호산나교회 초창기 장로들 4~5명과 김상권 장로이다. 그때 따라 나간 성도 100명과 부산중부경찰서 옆 건물에 개척예배를 드렸다. 얼마 후에 사하구 하단동에 대지를 구입해 성전을 지었다. 방주와 같은 성전을 짓기 위해 건축위원장에 김상권 장로를 세우고 담임은 김형대 목사(지금은 통합 은퇴목사)가 방주 같은 새중앙교회를 건축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룟 유다 예찬론이 직·간접적인 교회 분리의 불씨가 된 계기라고 교회사가들이 분석하고 있다. 교회분열의 핵심은 신앙적 문제보다 두 마리의 호랑이 집사의 파워게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해하는 분들이 지금도 살아계시는 호산나교회 원로들, 부산중앙교회 초대 장로들이 더러 있지만, 하나님께서 싸울 바에야 사이좋게 발전적 분리를 시키신 것이 아닐까? 지금의 명지동 호산나교회는 일만 여명의 교인들이, 남구청 소년수련장 근방 부산중앙교회는 천여 명의 교우들이 신앙생활 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예언론적 은혜의 결과라고 결론짓고 싶다.

신이건 장로

201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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