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故 김광일 장로, 야성 강한 개혁적 인물로 비춰


故 김광일 장로 (1939~2000)

내년이면 故 김광일 장로가 하늘나라로 간지 꼭 5년이 되는 해이다. 그의 지난 삶과 유고집들을 정리하기 위해 그의 큰 아들 김성완 장로(부산중앙교회)가 교회90주년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 지나온 역사의 현장에서 신앙 양심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김광일 장로의 신앙의 삶을 재조명하는 뜻에서 이글을 쓴다. 영면하시길 기도하면서...

△故 김광일 장로와의 첫 만남
1979년 초여름이었다. 서구 부민동, 당시 부민교회 옆 법원 정문 앞 2층 사무실에 ‘김광일 법률사무소’라는 간판을 걸고 변호사 사무실 첫 개업 인사를 교계신문에 광고 한다기에 찾아갔다. 그 사무실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눴다.
경북 영덕 지원에서 마지막 판사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했던 그때가 아마 40대 중반일까 싶다. 아주 영특하고 총명한 40대의 젊은 엘리트 크리스천으로 비춰졌다.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교계신문(당시 교회연합신문)과 자주 만나 교계의 이모저모의 문제를 나눠보자는 그의 첫 인상은 다정다감했고, 따뜻한 카리스마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대화중에 분노하는 개혁적인 인상이 많이 풍기는 이면도 있어 보였다.
그 당시 한국교회 70~80년대의 풍요로운 성장과 가진 교회와 못 가진 가난한 개척교회와의 빈부격차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이 마치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과 같이 야성이 강한 인상이 가슴에 와 닿았다. 변호사 개업인사 광고를 받고 나오면서 ‘언젠가 한국교회, 특히 부산교계에서 큰일을 하실 분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자주 만나 뵈야겠다는 끌림이 있었다.
답답한 교계 풍토, 그 당시만 해도 “유신만이 살 길이다”라며 유신을 지지하는 유신목사가 있는가 하면, 경찰 선교를 위한 경목이란 직책으로, 경목이 마치 권력인양 경목신분증으로 어디나 통과되는 권력과 교권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노라”라고 외쳤던 세례요한이 종교지도자, 바리새인들에게 경고하던 모습으로 말하는 김광일 변호사가 부산에 혜성같이 나타났으니,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마른 가슴에 샘물을 주는 느낌을 김 변호사의 말과 행동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거의 매일 사무실로 찾아가 교계의 소식과 더불어 대화를 나눴고, 또 지도를 받았다.
물론 변호사 업무는 의뢰인이 많아야 한다. 부산 교계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북부산교회 영수 아들이 교회 소유재산을 찾겠다고 민사로 소송된 재산보전등기와 소유권 이전 소송에서 김 변호사가 통쾌히 승소했다. 교회가 당시 소유권을 등기하지 않아 곤경에 처했을 때 당회록과 제직회 기록한 기부결의만으로 거대한 교회 재산을 찾게 된 사건은 특종감이었다. 김 변호사와 필자는 마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와 같이 필자는 특종 기사를 찾아 좋고, 김 변호사는 교회사건을 맡아 좋은, 쌍방 이익을 보는 관계였으니 귀찮게 생각지 않고 변호사 사무장 비슷한 노릇을 하게 되었다.

△한국 엠네스티 부산지부장을 맡아
유신 군사정권이다 보니 경찰, 보안사의 정보 감시가 급격히 강화된 시절이었다. 억울한 청년들이 구속됐고, 변호사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때 소설가 김정한 선생이 찾아와 엠네스티 부산지부장을 맡아 보라고 권유를 했다. 첫 창립된 부산지부 장소가 서구 토성동 지금의 기독사회복지관이었다. 엠네스티하면 사형폐지운동을 하는 세계적인 인권운동 단체다.
당시 그때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김 변호사가 부산에서 유일하게 맡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진주교도소에 수용 당시 한 주에 한두 번씩 면회 온 이희호 여사(감리교 장로)가 면회 때 김 변호사와 동행한 것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그때부터 정보기관에서는 ‘요시찰인물’로 지목하고 동태를 낱낱이 살피는 정보형사가 있었으니, 서부서 정보과 윤 모 형사였다. 매일 변호사 사무실 주변과 사무실을 체크하는게 의무였다. 누가 출입하고 누구와 만나는지를 일일이 보고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 김 변호사의 인간성을 알 수 있었다. 미워하지도, 꺼려하지도 않고 마치 형제처럼 교인 대하듯이 친절하고 반갑게 “밥 먹었나?” “어디 아픈데 없는가?”라면서 휴머니스티 정신을 발휘하지 않는가.
(계속…)

신이건 장로

2014.09.27
지난 기사를 보실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110년 전, 항구 서쪽에 복음으로 세워진 부산 항서교회



-암울했던 시대에 복음의 빛으로 세워진 교회
-한국전쟁, 피난민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
-‘학사교회’라고 불리던 교회
-지역사회를 품고 다음 세대와 함께 할 ....

 

2015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 준비위원장 이성구 목사



Q 기존 ‘부활절연합예배’라는 이름에서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A 기독교 최대 명절은 부활절입니다. 그런데 ....

 

삼일교회 성도가 공개한 송태근 목사 청빙 일화 ‘주목’

▲송태근 목사가 삼일교회 청빙을 받아 부임하던 시기, 강남교회가 보여준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새삼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진 삼일교회)


삼일교회를 다니는 한 성도가 3년 전 송태근 담임목사의 청빙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시기 강남교회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