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을 가능케 했던 것은 기독교 재야인사들의 공로


부산중부교회와 최상묵 목사
1979년 10월 부산민주항쟁의 불길이 치솟았다. 요원의 불길처럼 활활 타올라 부산에서 서울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유신 독재정권을 무너뜨려 이 땅에 민주화를 가능케 했던 것이 부마민주항쟁사건(속칭 부마사건)이었다.
그 항쟁을 가능케 했던 민주기독교재야운동 인물들은 누구일까? 그들의 현재를 알아본다.
부산의 민권운동 조직으로는 부산도시산업선교회(총무 박상도), 국제사면위원회부산지부(지부장 김광일 변호사), 부산양서협동조합(이사장 이흥록 변호사, 조합장 김희욱 집사), 사회정의구현부산기독인회(회장 임기윤 목사), 부산교회인권선교협의회(회장 박광선 목사), 부산EYC(회장 임동규 목사) 등 부산YMCA(이사장 우창웅 장로) 그때 그 시절 당시 중요 재야 기독교 인사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기독교 재야운동의 요체이자 중심이었던 부산중부교회(중구 보수동 소재 헌책방 골목)는 부산 민주화운동의 요람이자 공급처였다. 이 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부산의 모든 재야세력인사들은 연결하고 결집할 수 있었던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서울의 명동성당이 있다면 부산은 중부교회가 있었다.
수도 서울의 재야운동인사들은 중부교회를 일단 거쳐 가는 연결고리였다. 군부독재정권이 부산에서 제일 요 시찰 인물 근거지로 손꼽는 곳이기도 하여 중부교회 장로, 교인들은 그들만의 각오와 탄압, 그리고 회유 압력을 받아왔다. 필자는 그때 중부교회에 출석하여 10년간 중부교회를 다녔다. 당시는 필자의 친동생 육사27기 신용수 중령이 대령으로 진급할 시기로 보안사 요원들이 찾아와서, “당신 동생이 진급을 하려면 교회를 옮기는 것이 가문에도 좋을 것이요”라고 협박하는 바람에 그때 기장교단에서 지금의 통합 측 은성교회로 옮겼다.
부산민주화운동의 복덕방이기도 한 중부교회는 한주일도 쉬지 않고 수·금요기도회와 시국강연회를 가지고, 중앙의 박형규 목사, 문익환 목사, 문동환 목사, 한완상 교수(서울대해직교수), 서남동 교수(한신대), 이문영 교수(고려대해직교수), 강원용 목사(크리스찬아카데미원장, 경동교회 담임) 등 이 땅의 중요 민주 인사들이 단골 강사가 되어 대학생들의 큰 호응을 일으켰다.
때로는 탄압받는 저항운동가들의 피난처역할을 하며, 의식 있는 교회청년들 수십 명이 학교에서 제적당해 억압받는 등 교회사적인 통곡의 위안처이기도 했던 곳이 부산중부교회 70~80년대이다.
고(故)최성묵 목사는 서울대 3학년 재학 중 중퇴하고 한국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연세대신학대학원을 나왔다. 부산중부교회 담임을 하기 전 미문화원프로그램 청년 간사와 부산YMCA 총무를 거쳐 중부교회 담임으로 오게 됐다.
이때 기장교단 최성묵 목사와 합동 측 부산중앙교회 장로 김광일 변호사의 만남이 부산을 재야운동의 불을 지피게 한 계기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부산YMCA에서의 만남이 그들을 결속케 한 것이다.
김광일 변호사, 노무현 변호사, 문재인 변호사는 모두 부산YMCA에 이사 또는 시민중계실 법률자문을 맡아 참여했다. 여기에 감리교 출신 고(故)임기윤 목사(부산제일감리교회 담임)와 부산진교회 고(故)강성두 목사, 고(故)우창웅 장로(부산교육대해직교수, 부산YMCA이사장)의 연결은 물론, 가톨릭의 송기인, 오수영 신부와 신·구교의 교회일치만남은 실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통곡하는 이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하늘이 맺어준 언약의 약속이었을 것이다.

△고(故)임기윤 목사의 보안사 연행
보안사 삼일공사에 붙잡혀 간 임기윤 목사와 이흥록 변호사(부산양서협동조합 이사장)은 조사를 받는 중 한 조사원이 탁자를 치면서 “당신! 공산주의자고 북에서 지령 받았지?”라고 소리치자 “무엇이 어째!”라고 말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급히 구급차에 실려 부산대학교병원 응급실에 갔지만 뇌출혈로 하루 만에 소천 했다.
그때 감리교 삼남연회 김재황 감독이 수습대학위원장으로 부산서라벌호텔에서 보안사 책임자와 수습 담판을 지었다. 임기윤 목사의 자녀에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주는 조건으로 매듭지었다. 임 목사의 자녀는 부산의대를 나와 현직 의사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기장교단과 감리교, 그리고 통합, 합동 측 장로 그리고 가톨릭 신부까지 초교파, 신·구교 연합일치가 된 것은 하나의 민주화실현이 공동목표요,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자 하는 자유민주주의 실현 구현이 공동분모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은 대부분 소천 하였으니, 하늘나라에서 만나 회포를 풀면서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겠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노라고!

신이건 장로

201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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