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선교사 맥켄지 가의 두 딸에 의해 설립 된 일신기독병원의 뿌리


선교사 맥켄지가 부산에서 결혼해서 신방을 차리고 딸 넷 그리고 아들 제임스를 낳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아들은 1922년 2살 때 디프테리아로 사망했으나 명문가 맥켄지 가는 토종 부산 사람이다.
구한 말 1905년 호주선교사로 메리 켈리(Mary Kelly)여사가 처녀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5년 후 맥켄지 목사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한국 땅에 와서 이들은 만나 사귀게 되고 결혼하여 부산에 신방을 꾸민 최초 선교사다.
1913년 첫 딸 매혜란, 1915년 2살 터울로 둘째 딸 매혜영, 셋째 딸 루시, 막내 딸 실라를 차례로 낳은 딸부자였다. 죽은 아들은 언덕위에 무덤을 만들었다가 지금은 부산진교회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이들 부부는 간호사도 의사도 아니다. 나환자들을 위해 복음을 전파하면서 치료도 해주고 또 젖이 없어 보채는 아기들에게 분유도 사 주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 했다. 그들의 두 딸은 어릴 때는 동구 좌천동에서, 고등학교는 평양외국인선교사학교를 나온 후 호주로 돌아갔다. 언니는 호주 멜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멜본퀸빅토리아병원에서 수련을 받아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고 동생은 간호사로 호주 아동병원 부속 간호학교에서 공부하고 조산원 교육을 받아 영아 간호에 특별교육까지 수료했다.

△두 자매가 다시 부산에 정착하다
1940년 언니 매혜란은 아직 수련중이어서 동생 혜영만이 한국에 가기 위해 배를 타고 일본항에 도착했다. 2차 대전으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 갈 수 없어 호주빅토리아 병원에서 수련을 계속 쌓다가 1944년 2차 대전이 종식될 무렵 중국에 있는 운남으로 갔다. 그곳에서 처음이자 유일한 ‘서양의학’병원을 세웠다.
1950년 6월에 중국교회연합회가 외국인들을 떠나보낼 것을 요구 받고, 1951년 10월 한국으로 입국이 허용되었다. 1952년 2월에 호주장로교선교사로 부산에 도착한 것이다. 6.25사변 후 처음 몇 달 동안 폐허가 된 이곳에서 피난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모자보건사업을 시작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 두 자매의 뜻을 알게 된 보사부와 유엔기관들은 모자보건의료사업의 필요성을 이해하여 이 자매가 이 사업에 전념토록 위임했다.
그 당시 의료법은 조산원 교육에 대해 아무런 규정이 없어 일반 간호학교를 졸업한 간호사들에게 조산원 자격을 부여하는 실정이었다. 이들 자매는 몇몇 사람과 이사회를 조직하고 호주장로교의 재정후원과 UN CAC(전쟁구호지원회)로부터 의료품 및 설비부담, 조달의 약속을 얻어 산부인과 환자 및 영아들을 돌볼 수 있는 소규모의 병원을 부산 동구 좌천동에 설립한 것이다.

△일신기독병원의 태동
1952년 9월 17일 부산진교회로부터 일신유치원 건물 사용 허락을 받아 산부인과 진료, 영아 진료로 ‘일신부인병원’의 문을 최초로 열었다. ‘일신’(날로 새로움)이란 명칭을 걸었던 것은 1910년 호주선교부가 설립했던 학교의 이름과 같으며, 매일 새 생명들이 태어나는 병원의 이름으로는 적합하다고 판단되었다. 처음엔 5명의 직원으로 시작되었다. 제1대 병원장은 매혜란이고, 매혜영 간호사, 유경순 간호사, 서무과 방필수 집사, 건물 관리에 김금지 집사였다. 10일 후 이홍주 의사와 현정훈, 김금련, 김금순 간호사가 들어와 같은 창립멤버가 되었다.
1953년 9월 17일 개원 1주년이 되는 해는 직원이 22명, 1955년에는 69명으로 증원되었다. 1953년 말까지 입원환자가 1일 평균 37.5명, 외래환자 수가 총 9619명이 진료 받았다. 일신부인병원은 설립목적에 맞게 어려운 사정의 환자들에게 빈부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진료를 무료로 제공했다. 무료 환자 평균 40%, 외래 12%로 금액으로는 7,680,000원이었다.
필자는 이 병원에서 당시(1972년) 행정부장인 이광혁 장로(부산영락교회 원로)에게 부탁하여 첫 아이를 무료 진료를 받아 낳았다. 정말 그 당시 일선 기자의 생활이란 비참했고 재정은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매일 먹는 것을 걱정할 정도였으니 아이를 병원에서 낳은 것만으로도 꿈만 같았다. 41년 만에 병원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글로 보답하는 셈이다. 퇴원할 때는 한 보따리 담요며 옷가지를 얻어왔는데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것인지 모른다. (…계속)

신이건 사장

201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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