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 안의 목회자 인권 사각지대, 누가 보상 할 것인가?


이종승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목사들은 대부분 노회 안에 적을 두고 있는 회원들이다. 타 노회로부터 혹은 목사 안수를 받은 목회자는 모두 노회 안에 가입 순으로 명부가 새겨져 있다.
부산노회 소속 이종승 목사는 가입 순으로 31번째로 등록돼있다. 지금 경남중·고등기독동문회에 파송된 전도목사다. 금년 연말이면 만 70세로 정년은퇴하게 되는, 부산노회 회원이 된 지 만 20년이 되는 목회자 고참이다. 그는 일본에서 출생하여 해방 후 경기도 수원에서 살다가 1·4후퇴 시 부산 초량동으로 이사와서 젊은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다.
1960년 5·16이 있었던 당시 부산 경남고등학교에서 총 학생회장 7명 후보 가운데 최고 득점인 938표를 획득하여 1500여 명의 학생들을 대표하는 학생회장이 되었다. 학부는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다녔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사를 2년간 수료한 후, 공군간부 후보생으로 군에 들어가 대위로 예편했다. 그리고 광나루신대원에 77기로 졸업한 엘리트였다.

△신광교회 부임
1991년 가을, 부산 서구 대신동 소재 신광교회에 부임하여 위임목사가 되었다. 부임한 지 3년이 되던 해, 교회 안에 분쟁이 일어 이종승 목사의 진퇴문제로 심한 진통을 겪었다. 담임목사의 사모가 너무 신령한 나머지 사모가 이 목사의 목회 운영을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목사는 속절없이 아내의 말대로 목회 행정을 이끌어 나가다 보니 당회원 간의 갈등이 일기 시작했고 이것이 분쟁의 주원인이 됐다.

△노회재판으로 간 이 목사
신광교회 당회원 가운데 한 명이 정식으로 이 목사를 걸어 노회에 고발장을 내고 노회는 재판을 열었다. 이 목사는 목사 정직, 지지하는 여집사 3명은 출교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이 목사는 총회에 소원하여 억울함을 호소했다. 총회재판국은 1995년 9월 총회에서 “부산노회는 대리당회장이었던 박광선 목사가 교회 치리회재판을 할 수 없는데도 재판을 했으니 부산노회 재판은 다시 재판을 하라”고 이종승 목사 손을 들어 주었다. 그 이듬해 부산노회 재판국은 총회에 재심을 요청하고 특별재판국에 상소하게 되었다. 이 때, 총회특별재판국은 이종승 목사를 가중처벌 형식으로 목사 면직을 시켜 판결은 1승 1패로 끝이 나게 된 것이다. 총회재판국은 이종승 목사 손을 들어 주었고, 총회특별재판국은 부산노회 손을 들어 주는 꼴이 되는 웃지 못 할 교회재판의 한계를 들어내게 된 것이다.
이종승 목사는 이제 더 이상 총회의 노회 재판을 못 믿겠다면서 사회재판에 형사 고발하게 되었다. 1심에서는 기각을 당했는데 2심 고검에서는 대리당회장인데도 임시당회장으로 사문서 변조한 혐의로 당시 재판국 서기인 배 모 장로를 벌금 2백만 원으로 정식재판(98고약36849 부산지방법원 판사 박봉환)에 의해 약식 명령을 받았고 이로 인해 반쯤이라도 이 목사는 명예 회복의 기회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신광교회로부터 떠났고, 부산노회 회원 명부에서는 목사 면직 처분관계로 이름이 삭제되는 인권유린을 당하게 된 것이다.
1995년 1월 부산노회 재판국(국장 故 김동명 목사) 대리당회장 파송 건의서에 기재된 제목을 ‘임시당회장 파송건의’로 고쳐 수습전권위원장 김동명 명의의 회의록을 변조한 것은 서기 배 모 장로였다. 그리고 이 목사는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을 청구 하였으나 부산지방법원 민사부는 소송 각하로 종결되었다.
2006년 4월 노회 시 부산노회에서 억울하게 목사 면직 된 이종승 목사를 다시 복직시키기로 안인호 장로가 발의, 만장일치로 가결되어 완전 복직되어져 10년 만에 목사 회원 명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산산히 부서진 가정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모는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큰아들은 대학 졸업을 1년 남겨놓고 집을 가출해 버린 채 현재까지 소식이 두절된 상태다. 작은 아들 하나만 재작년에 결혼해서 따로 살고 있다. 경남중·고등기독동문회원 500여 명이 이 목사의 딱한 사정을 알고 노회가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간청하는 사연을 본보에 호소하게 되었다.
한 목회자의 생명은 여지없이 무참히 땅에 부서졌다. 가족들과 흩어지고, 사모마저 사별하였으며 본인 역시 충격에 중풍으로 쓰러져 교회 목회도 접고 겨우 기초생활보호대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이 목사의 현실을 보고 부산노회는 목회자 동료의식이 있다면 노회차원에서 그 분의 명예와 응분의 정신적인 보상을 해야 할, 인권보상대책이 필요하다. 사회재판도 무죄가 되면 보상해주듯이 노회도 명예회복과 보상 대책이 요구된다.

신이건 사장

201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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