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초의 순교자, 복음의 씨를 뿌린 호주 선교사 데이비스


故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
이역만리 호주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 데이비스 목사는 부산, 경남을 위주로 선교하며 부산에서 순교한 최초 선교사였다. 그러나 그의 묘가 없어진지 오래지만 그가 묻혔던 곳이라도 찾아보려는 인사는 있어도 구체적으로 나서는 교계, 기관은 전무하다.
일반적으로 한국 기독교 역사의 시작은 알렌(Horace N. Allen)이 입국한 1884년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아마도 그가 인천 제물포 입항보다 훨씬 먼저 부산을 거쳐 한국에 입국하였다는 기독교 역사가들이 많다. 목적은 서울이었지만, 부산 땅을 밟았다가 다시 제물포를 거쳐 서울로 입성하였다는 정설에 신빙성이 있다. 그래서 언더우드 선교사, 게일 선교사 등 북미주의 여러 선교사가 있지만, 부산을 거점으로 선교를 교두보로 삼은 선교사는 호주 선교사 데이비스(Rev, Joseph Henry Davies, 1856~1890)선교사가 돋보인다.
그의 미완성 일지에는 1889년 10월 2일 이른 아침 부산항에 입항하여 부산을 둘러본 후 제물포를(10월 4일) 거쳐 서울에 도착한 것이 10월 5일, 그는 그곳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서울과 경기 지방을 답사하여 전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서울지역에는 선교사들이 많음을 보고 선교지를 한국 남부의 부산을 향해 1890년 3월 14일 서울을 떠나 수원을 지나 공주를 거쳐 남원, 하동을 지나 부산에 도착한 날짜가 4월 5일, 과로와 열병으로 그가 소원하던 한국 남부의 선교를 채 펼쳐 보지도 못하고 캐나다 선교사 게일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나라로 갔다.

△ 선교의 사역 펼쳐지지 못한 채 하늘나라에 간 데이비스 선교사
그가 묻힌 곳은 부산만이 내려다보이는 산언덕 작은 외국인 묘지(복병산)에 안장하였다고 했다.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회 해외선교위원회는 순교한 그를 본국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국선교위원회는 우리가 한국에 보낸 첫 번째 선교사인 데이비스 목사의 죽음이라는 큰 손실을 기록할 것을 원한다. 그의 열정적인 헌신과 학자로서의 탁월한 재능, 주목할 만한 지속적인 신앙생활, 다른 사람에 대한 강열한 영향력은 새로운 선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데 매우 적합한 것이었다. 우리 주님께서는 스데반이 일찍 부름을 받고 안식과 보상을 받았던 것처럼, 데이비스에게 분명히 복을 내리셨다. 우리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감화를 받아 그의 정신을 알리고 그의 열심을 본받아 우리의 옛 형제에게 주이진 것과 같은 영광의 왕관을 받기를 바란다”(부산진교회 100년사에서)
호주 장로회는 데이비스 목사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기 우해 데이비스를 파송한 호주 장로회 청년연합회에서 1890년 7월 23일 집행위원회를 소집하여 한국에 선교사를 다시 파송하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호주 남녀 78명의 선교사가 부산에 와서 선교를 하고 7명의 선교사와 그의 가족 여럿이 순교의 피를 이곳 부산에서 뿌렸다.

△ 부산, 경남 기독교역사연구회가 그의 무덤을 찾아나서..
2006년 1월부터 부산, 경남 기독교역사연구회가 늦게야 태동되고 이 지역의 기독교역사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흩어져 있던 선교사들의 유적과 교회를 답사하고 있었다. 이때를 기해, 2007년 4월 서울 양화진 선교회 신호철 회장이 전국의 선교사의 묘지를 찾아 기록을 정리하고 사명을 가지고 추진하는 중에 데이비스 선교사의 묘를 찾기 위해 부산에 왔다. 부산진교회 부활동산에 있는 예원배 목사 부인(엘리스 니본)의 묘와 맥켄지 목사의 아들(야곱), 맹호은 목사의 딸(케드릭)의 묘만 확인하고 그가 묻힌 복병산, 지금의 부산시 중구 대청동 기상관측소자리와 남성여고에 위치한 자리에만 답사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 복병산의 데이비스 묘지는 어디에?
부산 중구 대청동 공원 어디에 묻혔다는 예측은 하나 정확한 자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122년의 역사를 지닌 부산진교회(담임 이종윤 목사)는 데이비스 선교사 묘비를 교회 정원에 세우고, 교회 설립 110년이 된 그해에 기념사업으로 제막했다.
지금 남성학원이 있는 복병산은 엄청난 재개발과 도시의 발전과 함께 산이 깎이고 건물이 들어 세워지면서 호주선교사 묘지는 찾을 수 없으나 1935년 후에 부산시 동구 좌천동의 공동묘지로 이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의 좌천동 공동묘지는 부산진교회(동구 좌천동 763번지) 남쪽 높은 곳에 지어진 호주선교사 사택 뒤 석축위에 세워진 지금의 금성중·고등학교 남서쪽에 자리한 증병산 남쪽 부분이었다. 그곳 1930년대는 증병산의 아래쪽까지 공동묘지였으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아래쪽은 주택지로 변하고 공동묘지에 안장된 묘는 1970년 후반 부산시 도시정비 사업으로 묘의 연고자에게 이장비를 지급하고 무연고자에 한해서는 부산시립공원묘원으로 모두 이전시켰다.
122년 전에 선교사에 의해 뿌린 복음의 열매가 꽃이 피고 뻗어나갈 선교의 사명을 간직해야 할 것이다.
(S)

201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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