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태민 목사와 박근혜 대선후보


△ 최태민 목사는 어떤 인물인가?
1970년대 칼날이 시퍼랬던 유신 시절. 그 어느 누구도 말 한마디 잘 못 하면 귀신도 모르게 잡혀가던 박정희 정권 당시에 잘 나가던 인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고(故) 최태민 목사다.
최태민 목사는 일제 강점기 전후 공무원으로 활동하다 1949년 이후 육군 헌병대에서 비공식 문관으로 근무했으며, 1954년에는 절에 들어가 한때 스님이 되었다. 1955년에는 경기도 어느 농촌 마을에서 중학교를 설립, 교장을 한 경력도 있다.
어느 날 그는 불교에 회의를 느끼고 파괴승이 되어 다시 세속으로 들어와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에서 사이비 이단종교인 ‘영생교’를 만들어 교주 행세를 했다. 그후 그는 여기서 나와 합동 비주류 교단의 어느 한 교단에 가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때 건전한 교단 소속 목사로 행세하면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취지아래 여러 가지 구국운동기도회를 펴기도 했다. 이미 유신정권으로 인해 박정희의 독재에 환멸을 느낀 서민 속으로 파고 들기 위해 그는 ‘대한구국봉사단’을 창립해 어려운 이웃, 특히 나이든 노인과 서민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에게 무료 의료봉사활동을 전개했다. 의료보험이 없었던 그 시절, 의료취약지대에 있었던 70년대에 무료 치료는 그야말로 민심을 얻는 감초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때 ‘대한구국봉사단’은 명예총재 박근혜 씨, 총재 최태민 목사를 필두로 전국에 지부를 두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봉사활동을 벌였다.

△ 부산 구국 봉사단 출범
1978년 여름 부산 동구 초량동 지금의 부산 YWCA 뒤쪽 폐교된 학교 교사를 빌려 대한구국봉사단 부산지부 간판을 달았다. 더불어 무료 의료 봉사도 동시에 실시해 노인들과 서민들이 치료도 받고 약도 타기 위해 매일 줄을 서기도 했다. 부산 구국 봉사단 출범하는 날에는 최태민 목사를 비롯해 박근혜 명예총재가 온다고 하니까 그 당시 부산 시장이었던 박영수 씨를 비롯한 정계·관계 인사들이 나와 박근혜 씨를 영접하는 대대적인 축하를 벌이기도 했다.
이 막대한 의료 지원은 부산의사협회에서 의사 두 명씩 차출되어 진료를 위해 파견된 의사와 부산시 보사부에서 제약회사 약품을 지원 받기에 가능했다. 부산을 책임진 대한구국봉사단엔 부산지부장 변창남 목사와 구국봉사단원들은 단복을 입고 열심히 섬기며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 인연으로 변창남 목사는 지금도 노인들을 위한 한국경로복지 법인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 박근혜 명예총재와 최태민 목사와의 인연
그 당시 중앙정보부의 수사 자료에 따르면 “최태민 씨가 박근혜에게 ‘3차에 걸쳐 꿈에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는 계시가 있었다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 1975년 3월 6일 박근혜와 처음으로 대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최 목사는 63세였고, 박근혜 씨는 지난 2007년 후보 검증청문회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해 수많은 위로 편지와 전화를 받았다. 그 내용이 상당히 마음에 와닿았고 만나서 얘기를 듣고 싶을 때 만났던 사람이 최 씨였다”고 말했다.
1975년 5월 임진강에서 구국기도회를 개최하면서 초청한 분이 박근혜 씨로, 그때 대한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선교단은 이후 대한구국봉사단(1976), 새마을봉사단(1978)으로 이름을 바꿨고, 박근혜 씨와 최 목사는 명예총재와 총재로 활동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러한 사실을 안 이후, 중앙정보부장과 백광현 현 정보부 7국장을 청와대로 불러 배석시킨 가운데, 최태민 목사를 거세시킨 후 부정부패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자세한 보고를 받고 즉각 구국봉사단 관련 단체를 해체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후 최태민 목사는 보안사령부로 불려갔던 기록이 최근 모 일간지 기사에 보도되었다.
또한 최 목사는 박근혜 이름을 팔아 이권개입으로 수백억대의 재산을 모았으며, 결혼을 다섯 번 했으며, 다섯 번째 부인의 딸 최순실 씨가 지금도 건물 2채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태민 목사가 1975년 처음으로 박근혜 씨를 만날 당시에는 서울 불광동의 쓰러져 가는 단칸방에서 전화도 없이 살았다고 한 내용에 대해서 최순실 씨는 “당시 부모님은 서대문 근처 2층 양옥집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당시 모든 정치권력이 최태민 목사에게 이권을 청탁하기 위해 줄을 선 것만은 사실이다. 대통령의 딸이 명예총재로 있는 이상 그 누가 최태민 목사에게 접근을 마다하였겠는가. 그의 식솔들에게도 줄을 대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고(故) 최태민 씨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 박근혜 씨와의 이상한 소문은 사실과 다르게 흘러 퍼졌으나 뒷날 박근혜 씨가 후보검증 과정에서 “사생아가 있다는 증거를 내놔보라. DNA 검사를 하겠다”라고 정면승부수를 두어 소문은 거짓임이 밝혀졌다.
부산에는 이웃을 위해 대민봉사를 하면서 섬기던 대표적 성공 케이스인 변창남 목사(71세)가 지금도 경로복지회관을 통해 지역노인들을 위해 송계사회교육원과 송계경로대학을 운영하며 헌신하고 있는 것은 구국봉사단이 뿌린 씨가 결실을 맺은 것이다.
(S)

201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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