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딛고 대법관 꿈을 향해 달려가는 김 신 장로


김 신 장로 (1957~) (삼일교회 시무장로)

△부산 기독기관장 회장 역임
지난 4월 중순경 부산 교계 중진인사들과 함께 김 신 장로의 울산지방법원장 부임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다.
법원 앞 식당 집에서 울산지역 교계 저명인사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통해 담소를 나누면서 “부산기독기관장회 회장을 했던 관계로 울산에도 성시화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몇몇 기독기관장들을 만나 울산기독기관장회 창립 출범을 서두르고 있다”고 귀띰을 해주었다. 그는 늘 향판(지역법관)을 하면서 울산·부산 지역을 두루 다닌 향판 판사이기도 했다. 김 장로는 법관이 된 지 18년 만에 법조계의 별이라고 하는 대법관 4명 공석자리에 임명되는 행운을 얻었다.
부산기독기관장회 회장과 기독법조인들의 모임인 부산애중회 회장을 하면서 그는 늘 서민적이고 약한 자, 소외된 자들의 친구로서 선한 사마리아인 다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그를 예수님과 닮은 사람이라고 하며 동료 법조인들은 그에게 목사님이라는 닉네임을 붙이기도 했다.
그와 함께 매주 화요일 조찬 성경공부를 4~5년간 해오는 동안 자신이 판사이긴 해도 현직 판사 이미지를 풍기지도 않고 늘 다정한 시골 동네 친구같이 겸손했다.
어느 날인가 자신이 모처럼 저술한 책 한 권이 인쇄·발간되는 과정에서 출판사 모 씨가 비용을 너무 많이 요구하고 책 필름까지 주지 않아 애를 먹일 때, 필자에게 전화를 해서 “이 친구를 잘 설득해서 순순히 주라고 하면 어떨까요”라고 상의할 정도로 위협적으로 대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해결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고, 김 장로가 평소 대화와 조정 역할이 몸에 베여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이미 알려진 대로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중·고교를 다닐 때 옆에서 책가방을 들어주고 엎어주기도 한 안 흥일 친구는 고신측 목사가 되고 자신은 서울 법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하나님을 깊이 알고 영접한 것은 법대 재학시절로, 기숙사 방에서 룸메이트를 통해 성경을 읽고 교회에 나오게 됐다는 그의 신앙 간증을 들은 바 있다.
사법 연수를 수료한 1982년 두 번째 큰 고비가 찾아 왔다. 그가 판사가 되고 싶어 판사를 지원했는데, 그 해 발표된 판사임용명단에 이름이 빠져 있었다. 장애인인 그는 현장 검증이나 출장 등이 잦은 판사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이 판사임용 거부 사유였다. 그 때 부산지역 일반언론들은 한결같이 소외된 판사임용에 장애인 배제는 인권유린이고 반사회적 행태라고 시민단체·인권단체 그리고 장애인연합회가 강력히 들고 나와 여론화 시켰다. 그 때 서울지검 부장판사였던 김용준 전 대법관(헌재소장도 역임)도 대법원으로 찾아가 “나보고 사표를 내라는 거냐”며 따지면서 측면지원했다. 그러자 결국 대법원이 손을 들었다.
그는 늘 소수의 편, 소외된 이웃의 편이 되는 판결을 했고 교회장로 답게 교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부산동부지원 판사 시절 20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린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에서 피고에게 집행유예라는 파격적인 판결을 내려 사회로부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저를 사형시켜 주세요”라고 자포자기한 그 여인에게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살면서 죄를 회개하라”고 한 그의 판결은 부정한 짓을 한 어떤 여인을 두고 유대법에 의해 돌로 치려고 할 때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말한 예수의 이웃 사랑을 실천한 것이나 별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늘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는 “우리는 믿음의 형제들이니까하는 말인데 부단히 깨어 기도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종교개혁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교회에 대해 자성적인 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 내 분쟁이 있었던 부산 A교회에서 원로목사가 삭발을 하고 강단에서 투쟁을 하는 사건에서는 재판을 정회하면서까지 두 쪽 다 잠시 밖에 나가서 화해수습안을 가지고 들어오라고 하여 극적으로 화해를 이끌어 냄으로서 ‘솔로몬의 지혜를 얻은 재판관’으로 소문이 났다. 김 신 장로의 딸도 지금 아버지 뒤를 이어 이화여대 법학도로서 법조인이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시무 교회인 삼일교회에서도 한 때 교회 당회의 어려운 문제를 두고 자신이 먼저 교회장로시무직을 1년간 휴직한 일도 있었다. 1년 후 다시 복귀했지만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에서만 자신이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이중표 목사의 별세의 신학을 실현하기도 했다.
그는 대법관 제청 소감에서 올해 시각장애인으로 처음 판사가 된 최 영 서울북부지법 판사를 언급하면서 “그는 판사를 하는데 나보다 더 심각한 장애인이고 시각장애인 판사”라고 말하면서 “이젠 우리사회와 법조계가 보다 많이 성숙해졌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S)

201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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