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마산 3.15 의거


격동의 세월이 흘러 간 역사의 흔적들이 봄잎의 새싹처럼 피어나고 솟아나는 4월의 계절, 이 때를 생각하면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1960년 3.15 역사의 현장
마산중학교를 졸업한 직후 마산고교에 입학을 며칠 앞 둔 3월 12일경이었던 것 같다. 자산동, 마산여고 밑, 하숙집에 하숙하던 낮 12시, 여기저기에서 쑥덕쑥덕하는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마산도립병원 마당에 어느 학생이 눈에 최루탄이 꼽힌 채 바다에서 건져져서 안치되어 있데. 그것도 최루탄이 터질까봐 병원 마당에 붕대를 감아 놓은 채 시신을 공개하였데…”
대게 이런 흉흉한 소문들이 입에서 입으로 흘러 나왔다. 마침 우리가 기거하던 하숙생 몇 명이 “가보자! 그곳 병원으로!”라며 선동하자 “그래. 함께 가보자”라고 응수를 하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가보니 마산도립병원 마당 입구 누각 비슷한 공간에 김주열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꼽힌 채 누워있지 않은가?
이 현장을 본 마산 시민·학생들은 웅성웅성거리며 시위를 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분위기였다. 그날 오후 6시 해가 질 무렵, 마산 오동동 불종거리에서부터 서마산쪽 마산창신학교 학생들이 먼저 불을 붙이며 데모 군중이 되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남성동 파출소로 가자! 마산 시청으로 가자!”라는 구호와 함께 시민·학생 2,000여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자산동에 위치한 마산도립병원과 마산시청까지 거리는 불과 500m이내 거리다. 걸어서 추산동 마산문창교회까지 걸어 갔다. 그 때가 오후 6시 40분경 서마산 쪽에서 데모군중들이 오동동 쪽으로 해서 남성동 파출소로 향하고 있지 않은가. 손에는 돌과 몽둥이를 들고 “부정선거 다시하라! 이번 선거는 무효다! 물러가라 이승만!”이라는 구호가 귀에 들렸다. 성난 군중들은 밀물처럼 모여 무려 5,000여 명에서 많게는 1만여 명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였고, 대부분은 남녀 학생들이었다. 데모대들에게 불씨를 지펴 준 것은 김주열 시신을 본 마산시민들이었다. 어떻게 어린 학생의 눈에 최루탄을 꼽아 터트리게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모자라 마산중앙부두 합포 바닷가에 돌로 수장시켰으니. 성난 군중들은 마산 시청으로 몰려가니까 경찰들이 물대포로 저지했다. 더욱 성난 군중들이 합세하면서 마산 시청 외벽 유리창은 산산히 부서지고 깨지고 박살이 났다. 데모대들이 마산경찰서로 몰려 가니까 그 때 경찰이 쏜 총에 옆에서 픽하고 쓰러진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이 고(考) 김용실 열사(21회)로 나의 한해 위 선배였다. 당시 18세 기독교 신자로 두부관통 총상을 입고 도립병원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마산성호초등학교, 마산중학교 1년 선배다.
그 때 누군가 “경찰이 총을 쏜다. 엎드려라”고 고함을 치는 바람에 나는 쓰러진 학생을 몇이서 엎고 도립병원 응급실에 들고 갔다. 이미 내 옷에 묻은 피가 범벅이 돼서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 입어야 하겠다고 하숙집으로 가니까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가 “와이카노. 학생 이러면 큰 일 난데이. 내 밥줄 끊어버릴 일 있나? 절대 못 나간다”고 대문을 꼭 잠그고 밖에서 감시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그만 집에서 라디오 소식을 들으니까 내가 데리고 간 학생이 마산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는데, 끝내 죽고 말았다는 라디오 소식에 분개하여 하숙집에서 울분을 참지 못했다.
이것이 내가 겪은 3.15 마산부정선거 데모의 한 단면 스토리다.
이후 3.15의거는 4.19 혁명으로 이어졌고, 민주주의 꽃을 피운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이 마산 3.15 부정선거 의거로 4.19혁명으로 민주화의 꽃이 만발했다.
아~ 아~ 어찌 잊겠는가. 3.15 선거 데모광경을. 젊은 피 한 몸 던져 이 나라의 민주화의 한 줌의 재가 된다면 어찌 기뻐하지 않으리… 고귀한 김주열 군은 같은 동갑내기. 그대는 마산상고를 진학하기 위해 입학식을 며칠 앞두고 있었고, 나는 마산고에 1학년 입학식을 앞둔 역사의 현장에서 서로 다른 길로 걸었다네. 그대는 영원한 이 나라의 민주화의 거름이 되었네. 영원한 나라에서 대한민국 만세라고 합창할 것을 믿네. 그대여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 영원하라. 하늘나라에서 만나나보세.

신이건 사장

201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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