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대학교 의과대학의 설립비화_ 두 분 장관 역할이 컸다


현대사는 사실과 진실의 두 명제 앞에 나타나는 역사의 흔적과 그림자가 투영되는 것을 말함이다.

▲ 고신대 의과대학의 시작
고신대학교 의과대학은 이렇게 설립됐다. 1981년은 이 나라 민주화가 성숙되기 전, 군사독재시기인 국가적 혼란기 속에서 국보위가 국정을 운영하던 암울한 시대에 태어났다.
당시 고려신학대학과 복음병원이 운영되던 시절, 의과대학을 설립한다면 반드시 그만큼 대학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는 먼 안목과 비전을 느낀 박영훈 전 원장(복음병원·고신의료원)은 평소 스승 장기려 박사의 아이디어로 반쪽짜리 간을 이식하는데 연구·임상 실험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간이식을 연구하며 개를 통해 실패를 거듭한 끝에 우리나라 최초로 간이식을 성공하는데 크나큰 획을 그었다.
동시에 종합병원이 있는 만큼 의과대학을 통해 연구하고 임상실습 하는 것에 누구보다 절실함을 느낀 박 원장은 시대적 혼란기를 틈타 한강이남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한국교회 어느 교단도 생각지 못한 의과대 설립을 준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박 원장으로 하여금 특별하신 섭리와 추진을 허락하신 은혜라 할 수 있다.
그때 여건이 좋았던 계기는 국보위 위원장 전두환 씨 밑에 간사로 수고한 공군참모총장 서동열 씨가 이화동 전 원장의 동서였다. 그리고 국보위 시절 문화공보부 장관이 이원홍 씨였으며, 교육부장관이 이규호 씨였다. 이 분들을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시키셨고 사용하셨다.
이원홍 씨는 제일영도교회 출신이며, 박영훈 원장과 한방에서 2년간 숙식을 같이한 절친한 친구였다. 이원홍 씨는 부산중학교에, 박 원장은 동래중학교에 다닐 때 박 원장의 친형이 이들 둘을 친동생처럼 키웠다. 그러니까 이원홍 씨는 친구 집에서 친구 형의 도움으로 2년간 숙식을 제공받아 은혜를 입고 있었다. 이원홍 씨가 한국일보 편집국장 재직 시절, 국내 최초의 간이식 성공이란 1면 톱기사로 친구 박 원장을 대서 특필한 적도 있다.
친구로부터 부탁을 받은 이원홍 씨는 같은 진주성남교회 출신 크리스천이었던 이규호 장관한테 사전 얘기를 해놓고 박 원장에게 이규호 장관을 찾아가서 의대설립을 얘기해보라는 전갈을 일러 주었다.
어느 날 박 원장은 이규호 장관과 5분간 면담 허락을 받았다. 첫 말씀에 “나는 진주성남교회 출신이고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며 이 장관의 학창시절 신앙생활을 하게 된 내용을 듣게 되어 부탁하는 데에 마음이 놓였다고 한다. 그 당시는 국보위에서 논의할 때 대학설립에 따른 사업프로젝트가 구체적으로 없어도 되는 시절, 일단 해준다는 뜻이 전달된 이상 신청만 해도 되는 시절이었다.
결국 국보위에 올려 허락받는 것이 고신대학과 충청도 원광대학 그리고 경남의 경상대학이 의과대학 설립 허락을 받았다. 80명 직원으로 설립허락을 받았으나 의대설립 신청 당시 신학대학이란 이름을 다른 교명을 바꿔야 된다는 전갈을 받은 박 원장이 당시 고려신학대학 학장인 이근삼 박사가 고려학원 법인이사장 박두욱 목사가 미국에 출장을 간 사이, 교명을 ‘고신대학’으로 하고 설립 신청 서류를 교육부에 넣었다.

▲ 총회결의가 가장 큰 난관
가장 큰 난관은 총회 결의였다. 무엇보다 그해 9월 서울중앙교회당에서 총회를 하던 중에 라디오 뉴스에서 고려신학대학이 고신대학으로 교명을 바꿔 의과대학 설립허가가 났다는 뉴스 발표를 듣고 총회가 발칵 뒤집혔다.
총회가 허락도 하지 않은 의대설립이었고 교명까지 바뀌었으니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이근삼 학장은 총회 총대들 앞에 시급한 상황을 알리면서 무조건 “잘 못 했다”고 공회 앞에 정중히 사과했다. 반대에 나선 경북노회 총대와 경남노회 총대들은 “이들을 징계에 회부해야 한다”고 야단들이었다.
그 때 구원투수로 나선 사람이 경기·수도권 노회 김경래 장로였다. “존경하는 총대분들이여. 구약의 모세가 홍해를 건널 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바로 군사가 뒤쫓아 오는데 족장들과 의논하거나 총회를 열고 의견을 거쳐 홍해를 건넜습니까? 위급할 때는 일단 건너보고 생각해야지요. 고신의대도 불가피한 상황이여서 그렇게 한 것을 어찌 하겠습니까? 그냥 사과만 받고 용서해 주십시다”라고 폭탄 발언을 하자 장내 총대들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결국 총회장 김주오 목사는 사회석에서 정회를 선포한 후 저녁시간 이후에 속회를 하면서 총대들의 뜻이 “별도 법인 출자를 하여 추진”하기로 하는 명분을 주고 반승락을 얻었다.
뒷날 이 부분은 위기가 기회라는 것을 느낀 박영훈 원장과 이근삼 박사는 의대설립에 1등 공신역할을 한 것이고 산파역할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지금 이근삼 박사는 미국LA에 홍반식 박사 묘역 바로 옆에 묻혀 있다. 박영훈 원장은 고신의대 설립한 공로로 초대 의대학장을 했으나 교단 어른들과 의대 교수들은 예우는 커녕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듯 외롭게 집에서 세월만 보내고 있다.

201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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