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거목이 사라지다…김소영 목사


김소영 목사는 원래 목회 활동한 영적고향이 부산노회다. 예장 통합측 부산노회 목사 서열(노회가입순) 1위로서, 2위인 그의 친구 고 김동명 목사(대지교회 시무)와 함께 모두 하늘나라로 갔다.
부산노회 제125회~126회 시기인 1987~1988년 10월까지 부산노회장을 역임하고 바로 총회 교육부 총무로 계시다가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로 발탁되면서 한국교회 대표적인 기관의 간판스타로 김 목사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그는 이외에도 기독교서회 총무로서 조선출 목사 후임으로 활동했으며, 85년에는 아시아기독교교회협의회(CCK) 중앙위원을 역임했다. 그리고 영남신학대학총장까지 지내면서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발판을 다진 거목이었다.

▲ 김소영 목사와의 만남
필자와 김소영 목사와의 첫 인연은 그가 1962~75년까지 부산성덕교회를 시무했을 때였다. 무지역노회인 함해노회 소속이었던 교회를 지역노회인 부산노회로 가입시켰던 당시 그는 늘 빵모자를 즐겨 쓰고 다녔다.
그 때 김길창 목사가 아들처럼 김소영 목사를 아끼고 사랑하던 끝에 미국 유니온신학교와 캐나다 토론토신학교에 유학을 보냈다. 당시 김소영 목사는 남성재단 안에 지금의 부산신학대학 전신이었던 초교파 부산신학교 교무처장을 맡고 있으면서 남성재단에서 김길창 목사를 영적 아버지처럼 잘 모시고 다녔다. 물론 김길창 목사는 교장으로 있으면서 인재를 키워야 한다면서 김 목사를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 것이다.
유학을 가기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성덕교회 성도 중 한명이 미국에서 날라 온 영어로 된 편지를 읽다가 김소영 목사에게 뜻을 알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그 영문으로 된 편지 내용을 번역하지 못하면서 쩔쩔매는 순간을 지켜본 필자는 “적당히 둘려대십시오. 잘 있느냐라고 안부를 물었을 것이고, 여유가 되면 미국으로 오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이겠지요. 뭐...”라고 하면서 바둑이나 장기판으로 치면 훈수를 두었다. 김 목사는 당시 영남대 영문과를 나왔지만 실력차를 느꼈는지 어느 날 미국 유학을 간다고 했고, 그 말에 “영어 제대로 배우고 오시겠어요”라고 응수한 일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의 외모는 어느 연예인 못지않을 정도의 남자로서 풍채를 보더라도 멋이 있는 남자였다. 히끗히끗 샌 흰머리에 180cm가 넘는 키, 풍채 좋은 양복스리보단을 입은 핸섬 스타일, 그는 정말 외국의 영화배우 007의 숀 코너리를 연상케 했다. 김소영 목사는 미국과 캐나다에 수학한 후 부산신학교 교장대행 그리고 총회교육부 총무로 발탁되었고 그 이듬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로 스카웃되었다.
▲ NCCK 총무 발탁
부산에 있을 때는 늘 부산노회가 배출한 몇 안 되는 교계 유명인사였다. 유신시절 당시는 부산기독인교수협의회 회장으로서 젊은 기독인교수들의 의식을 한곳으로 모아 민주화를 위해 항거하였으며, KSCF(한국기독학생연맹) 이사로 활약한 바 있다. 그를 따르던 인물이 김동수 장로, 이직행·차선각 목사, 조운복 장로, 정권섭 장로, 여해룡·최성묵 목사 등이 대표적인 멤버이다. 김소영 목사의 중년 시절 활동무대는 거의 부산신학교와 부산성덕교회로서 후임에 남주석 목사가 시무했다. 작년 연말 남 목사가 먼저 하늘 나라에 가서 뒷 차로 데리고 가신 것이 아닌가 농담도 했다.
그리고 60년대부터는 중앙무대로 진출하여 기독교서회 총무, 찬송가공회회장, 기독교사상발행인, 기독교출판협회회장을 역임했다. 말년에는 영남신학대학총장을, 그리고 필리핀마닐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을 끝으로 활동에 종지부를 찍으며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가 NCCK 총무를 맡았던 시절은 한국교회가 군사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때라서 늘 정보과 형사가 미행 내지 1일 정보보고체크를 할 정도로 주요감시인물이었다. 한국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그의 남긴 흔적이 하늘나라에 가서 큰 상급으로 칭찬받으리라 믿는다.
지난 해 9월부터 병세가 악화되어 장남이 의사로 있는 고려대안암병원 심장혈관내과에서 신장이상으로 투석, 파킨스병에 시다리다가 2012년 새해 이튿날인 1월 2일 오전 7시 하나님 품으로 갔다. 한국교회의 거목이 우리 곁에서 바람과 같이 사라졌다. 영원히 안식 하시옵소서
유족으로는 이재신 여사와 2남 1녀가 있다.

▲ 후배목회자들은…
따뜻하고 인정이 많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였다. 목회할 때도 늘 교인 한 사람까지 보살피며 잃은 양 한 마리라도 심방하는 목회 현장을 배웠고, 중앙무대에 가서는 강한 자 앞에 타협할 줄 모르는 정의의 사도였다는 것이 후배 목회자들의 중평이다.
(S)

201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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