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재단설립에 재산 헌납한 故 이재석 장로


故 이재석 장로하면, 한국 목재상의 거목 정태성 장로와 부민교회와의 주 안에서 맺은 인연으로 잊을 수 없는 선한 영향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장로와 정태성 장로는 같은 경북 봉화 시골 한 동네에서 자랐다.
한때 이 장로는 일제시대 만주로 건너가 황막한 벌판위에 콩 재배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강원용 목사, 김재준 목사에게 영향을 받아 예수를 믿었다. 그 후 상해 임시정부에 몰래 독립자금을 떼 주는 조국 광복을 위해 알게 모르게 헌신했다.
일본이 망할 것으로 예측한 이 장로는 재산을 정리하여 조국에 돌아와 안양에 정착하였다. 수십만평의 땅에 포도 농사를 지었다.
얼마만큼의 돈을 모아 강원용 목사에게 찾아가 이 돈으로 자신이 평소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온 배움의 한을 느낀 나머지 학생에게 장학금을 희사하도록 거금을 주고 부산으로 피난하였다. 1950년 부산에서는 조그마한 인쇄소를 차려 운영했다. 열악한 자금 인쇄기계로 견디다 못해 부도를 맞았다. 그러나 만주 벌판에서 살았던 강인한 삶의 경험으로 건축도급일에 뛰어 들었다. 다재다능한 그의 재주는 평소 단련된 숙련으로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다.
1970년경 정태성 성창기업 회장을 찾아가 먹고 살도록 건축 공사를 맡았다.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부산YMCA 옆 신우아파트 착공이었다. 정태성 장로가 부산YMCA의 땅을 사서 그 위에 처음으로 부산시로부터 아파트 자금을 빌려 착공한 것이 분양하는데 성공했다.
두 번째 건축 사업은 진구 전포동 상가에 신우빌딩 6층을 짓고 기독교기관, CBS 등 교계 종합 건물을 지어 분양하는데 두 번째 성공을 했다. 적은 자금력으로 복음병원 간호대학 교실을 지은 것도 고신 장로였던 연고로 교단에 영향력이 있는 같은 교회 윤은조 장로의 소개로 발을 디뎌 착공을 했다. 교계로부터 신뢰를 얻은 이 장로는 어느 날 강서구 명지 지역 주민들로부터 30만평에 달하는 바다를 막고 매립하는데 도움을 요청받게 되었다. 바다를 메우는 방법에 모두 실패하여 이 장로한테 요청이 들어 온 것이다. 이 장로는 막대한 자금도 자금이지만 공사해 주고 넘겨주는 장사는 별로 생각하지 않아 주민들에 정태성 장로가 얼마 돈을 주고 인수를 받았다.
그런 후 정태성 회장한테 찾아가 자금과 목재소에서 나오는 나무껍질(피죽)을 수십톤 받아 바다를 메우는데 자금과 도움을 요청했다. 정회장은 현장에 와서 보고는 허락을 했다. 일종의 투기였다.
메우는 작업이 가능, 성공할까가 관건이었는데 피죽을 묶고 바다에 넣어 양쪽에 흙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다 물을 차단하는데 성공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바닷물이 차단 된 것이다. 이장로의 순수한 아이디어였다.
30만평 가운데 정태성 장로는 매립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하여 이재석 장로한테 1만평을 공로로 주었다. 그 당시 공시 시가는 5만원~10만원 정도. 그러나 이 장로는 5000평을 팔아 약12억원을 얻었고 나머지 2천평을 팔라하니까 상속세가 어마어마하게 물게 되었다. 그때 생각한 것이 부민교회에 증여하면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여 부민교회에 증여했다. 그런데 구청에서는 부동산 실명제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이 되고 과징금으로 1억9천만원이 부과가 되었다.
이 때의 고시 가격은 무려 40만원, 교회에서 순수하게 기증받은 땅은 2천평, 약 8억원가량. 이때 법에 벗어 날 수 있는 방안은 교회가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그때 김정남 장로가 교육위원 도움으로 서부교육청으로부터 장학재단 설립 허가가 나고 부산고등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얻어냈다.
▲ 농어촌 교역자 자녀 장학금 수여
이때부터 적립된 장학기금 약 8억원에서 연간 3천만원~4천만원까지 이자로 농어촌 교역자 자녀 장학금을 수여한 것이 현재까지 16년째 계속 내려 오면서 약5억원의 장학금이 나갔다.
지금 서울 영동교회 정현규 목사가 미국 유학시절 이 장학금으로 공부한 케이스다.
그 외 고려신대원 교수로 있는 김 모 교수는 남아프리카 포체스룸대학교에 유학한 비용도 부민교회 장학 수혜 혜택을 받은 것이다.
이재석 장로는 평소 이 장학제도를 통해 유언하기를 “부민교회에 사용하지 말고, 불우한 농어촌교회 자녀들을 위해 쓰되 이 관리를 믿을 수 있는 분은 윤은조 장로이니, 평생을 이사로 이 재단을 관리케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현재 설립자 후손 자녀에게 이사 2명, 그 외는 이사장은 자동 부민교회 담임목사, 그리고 시무장로와 집사, 그리고 윤은조 장로가 하다가 지금은 쉬고 있지만 나머지 이사는 부민교회 식구들이 맡아 관리하고 있었다.
▲ 이재석 장로의 자녀는?
평소 어머니 권사가 살아 있을 때 자녀들에게 많은 현금으로 도와주었다. 슬하에 5남 2녀를 두었는데 큰 아들 흥직, 창직(둘째), 셋째는 성직 목사, 넷째는 미국, 막내는 명직은 복음병원 전 노조 간부 출신이다. 그리고 이영은 교수(간호대학 학장역임), 둘째 딸은 목사 부인이 되었다.
평소 이재석 장로가 어려워 공부를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다음 세대들에게 한알의 밀알이 되도록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하늘나라에 갔다. 그 장학재단의 열매가 꽃이 되고 열매가 맺어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혜택을 입고 감사한 마음으로 씨를 뿌리며 다음세대들에게 아름다운 유산을 이어 나가고 있다.
(S)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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