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려 박사가 탄생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 2011년 10월 초, 장박사 기념사업회는 당연히 복음병원에서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념사업회 회장자리마저 그리고 기념행사도 모두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백낙훈 이사장이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소 장 박사는 백인제 선생을 자신의 의료계 높은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로 인연을 맺어 왔다. 장 박사는 평양의료전문병원에서부터 인제 스승의 지도를 받아와서 늘 스승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해왔다. 복음병원 원장 재직시절부터 백병원에서 명예교수로, 그리고 카톨릭 의대에서 명예교수로, 부산대학교에서 강의함으로 제자들을 일깨워 왔다. 장 박사의 하늘아래 백성은 친구요, 제자, 스승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천민사상을 지녀온 우주적인 예수사랑 정신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복음병원의 실질적인 법인 주인격인 고려학원 고신교단은 매우 달갑지 않은 교단으로, 은혜를 저버린 병원으로 평가해왔다는 장 박사 측근 인사들의 견해가 지배적이다.
△ 장 박사의 수제자는?
장기려 박사의 의료 수제자로는 누구보다 과거 70년대 복음병원 박영훈 박사를 꼽을 수 있다. 제1외과 과장이 박영훈 장로이고 제2외과 과장이 양덕호 장로이다. 그런데 장 박사는 경북의대, 부산의대, 서울의대를 편가르지 않고 사랑으로 유능한 의사를 길러 왔다. 하지만 박영훈 박사는 경북의대 출신이고 양덕호 박사는 부산의대 출신이기 때문에 서로는 보이지 않는 앙숙으로 남아 있었다.
결국 장 박사가 병원경영의 어려움이 봉착되어 일선원장에서 손을 놓자 고려학원법인은 그 후임을 고신교단 송도제일교회에 시무장로 하는 박영훈 박사를 후임원장으로 앉히게 되었다. 이에 반발한 부산의대 출신들이 병원 내에서 박영훈 원장을 몰아내기 위한 한차례 의사진료 파동을 일으켰고, 파업을 선동한 부산의대출신 의사들 몇몇은 구속이 되고 나머지 부산의대 출신인 양덕호, 한광설, 채종묵, 김재만 의사들은 병원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약 25년간 복음병원은 박영훈 원장이 재직하는 동안 경북의대 출신들의 전성기가 되었고 부산의대 출신들은 큰 소리도 못내고 조용히 진료에 전념해 왔다.
세월은 흘러 의사 주도권의 중심은 출신대학에 기인했다. 박영훈 원장 다음의 주도권은 경북의대 출신인 김재도 원장, 그 이후 병원의 부도로 임시이사가 오자 전병찬, 이충한, 현 조성래 원장이 부산의대 출신으로 병원 주도권은 25년만에 탈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제점은 장기려 박사가 제자들을 제대로 키워오지 못하고 경북의대, 부산의대 출신들 수제자를 서로 견제세력으로 만든 원인이 아니었나? 물론 장 박사는 어느 대학출신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환자를 잘 진료하는 의사면 되었지, 출신학교가 문제가 무엇이 될 수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해 왔겠지만 의사세계에서의 출신대학과 선후배 서열은 군대 계급과 같은 성격인 것을 장박사가 과연 몰랐을까?
한마디로 장 박사의 수제자 박영훈 박사는 결국 스승 장박사를 배신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장 박사가 병원을 떠난 청십자 병원을 운영하고 있을 때, 연중 한차례 스승 생일날에 장 박사의 댁에 모여 스승께 인사하는 시간에는 부산의대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경북의대 출신들은 배재되곤 해왔다.
△ 박영훈 2대 원장의 다음 수제자는?
박영훈 원장의 수제자는 이충한 전(前)원장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충한 전 원장 역시 스승 박영훈 원장을 배신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해마다 명절 때만 되면 이충한 전 원장은 박영훈 스승한테 새배인사를 드렸는데, 박영훈 스승이 제자 이충한 원장한테 “너는 간 연구나 하여 일류의사가 돼야 하기 때문에 병원 원장은 결코 해서는 안된다”는 충고 한마디가 매우 섭섭했고 이충한 전원장은 “자기는 원장을 해도 되고 나는 안된다는 논리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충한 전 원장은 원장 재직시 직원을 시켜 박영훈 전 원장의 개인연구실을 비워 진료실로 사용할 만큼 스승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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