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려 장로가 남긴 신앙이념은…


▲ 장기려 장로의 신앙
장 박사는 북한에 있던 학생, 청년시절 평양 산정현교회를 다녔다. 월남하여 아들 장가용 선생과는 부자 간의 깊은 정이 없었는지 아버지 장 박사의 사회적 헌신과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인술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없이 덤덤한 부자 관계를 형성해 왔다고 할까? 아버지 장 박사는 아들, 며느리한테 가서 생활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던 분이다. 월남해 50여년 이상을 혼자 살다보니 독신적인 삶이 몸에 배어있었다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면 장 박사의 신앙은 한마디로 무교회주의자에 가깝다.
장 박사가 부산 중구 부평동 소재의 산정현교회를 개척했다. 그러나 장소가 협소해 결국 사하구 괴정동 소재의 신성교회당을 인수해 그곳에 산정현교회 간판을 달고 오늘까지 지켜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장기려 장로 는 늘 자신에게는 우찌무라간조라는 일본 신앙의 스승이 자신의 신앙의 삶을 감싸고 있었다.
약 20년간 ‘부산 모임’이라는 신앙의 동지들이 모여 서클을 만들어 성경공부를 해왔다. 주일날 오후 예식장을 빌리기도 하고 또는 교회 오후시간에 성경공부를 시도한 것이다. 성경리더는 장기려 장로가 직접 내촌선생의 신앙과 주석을 가지고 성경연구를 강의했다. 때로는 월 1회를 정해 함석헌 선생을 모시고 강의를 들었다.
함석헌 선생은 김교신 선생(내촌의 제자) 수하에 공부하여 그의 영향을 많이 받고 한국교회 무교회정신을 전수하시는 어른이다.
함석헌 선생과 장 박사는 같은 고향 평북 용천 출신이었고, 장 박사는 암울했던 군사 정권시절부터 주요시찰인물인 함 선생을 불러 강의를 듣게 했다. 그당시 필자는 장기려 장로님께 말하기를 “함 선생을 모시고 오면 이북 정권실세들은 좋을지 모르나 현 대한민국 정부는 별로 좋지않는 기분이 들 것입니다. 장로님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너무 정치적 질문인데 그래도 나는 정치하고는 담을 쌓고 살고 있고 단지 함 선생은 신앙의 동지요 동향인으로서 그를 모시고 오는 것 뿐입니다”라고 어려운 질문을 피해나갔다.

▲ “장기려 장로는 산정현 교회 원로”
장 박사는 교회 시무장로로 계시면서도 늘 무교회주의에 붙들려 있다 보니 교회 십일조 개념이 희박했다. 교회에 내는 것을 자신이 스스로 감사하게 내고 십일조는 구약의 개념이니 안내도 되는 것으로 가르쳐왔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그 당시 시무했던 박광선 담임목사는 무척 목회하는데 걸림돌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다고 징계할 처지도 못되고 어정쩡한 관계를 영위한 것이다.
산정현교회 안수집사 일부도 십일조 개념을 장 박사와 동일하게 생각해 교회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교회 회계집사였던 손동길 안수집사는 뒷날 장 박사와 함께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장로로서의 장 박사는 낙제 점수를 받았지만 그의 숭고한 이웃에 대한 박애, 사랑을 실천하는 정신은 위대한 행동으로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교회를 이끌어가는 시무장로, 원로장로로서는 무교회주의 행동으로 교회에 어려움을 주었다. 지금도 그의 정신이 살아있는 몇몇 분들은 불우이웃을 예수정신으로 실천하는 분들과 선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 현재 산정현교회의 산고
산정현교회는 원래 독립교회를 유지하다가 박광선 목사가 시무함으로써 예장 통합교단 부산노회에 정식 가입시켰다. 산정현교회는 농·어촌 의료선교로 유명한 교회이며 교회 내 의사들이 이런 사역에 많이 동참해오다가 부산노회 남선교회연합회에 사업을 넘겨 지속하고 있다.
지금 산정현교회는 은퇴장로 7명 가운데 양덕호, 김영찬, 조동찬, 김신우, 장사충 장로와 은퇴권사 10명 그리고 안수집사 12명 중 9명이 현 시무장로(강현진, 유일식 장로)에게 사과 및 사퇴 압력을 하고있다. 하지만 시무장로들은 후임목사 청빙과 관련해 반대 측은 부목사를 내세우는데 반대한 이유로 아무런 사퇴할 이유가 없다고 해명했다.

▲ 장 박사와 고신 교단간의 갈등
장 박사는 복음병원을 설립하고 병원을 마치 무료병원과 같이 불우 이웃들에게 선한 천사 역할을 하다보니 병원 운영에 어려움이 닥쳤다. 그의 주변의사들은 대부분 고신교단과 결별 하자고 했으나 장 박사는 무소유정신으로 살기 때문에 혼자 병원 원장직을 내놓고 나왔다.
그래서 장기려 장로는 훌륭하였고 섬기는 교회에서는 부족했어도 사회와 국가를 위해 존경을 받아 아름다운 족적을 남겼다.

(S)

201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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