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 한국교회의 위기상황
1980년대부터 부흥하기 시작한 한국교회는 산업화, 정보화 사회와 더불어 풍요와 풍부한 물질성장에 따라 비대해지고 급속하게 성장일변도로 변해갔다.
과거 한국교회 초창기의 교회는 가난했으나 예언자적 사명을 잘 감당하여 목회자의 권위와 말씀은 대단했다. 사회에서의 목회자, 곧 성직자의 권위는 위대하고 존중하며 말이 먹혀들어가 일반 정치계에서는 무서워했다. 총칼을 들었던 군사정권 인사들을 향해 예언자적인 메시지가 더욱 강하고 담대했을 정도였으니, 그때의 목회자들을 일반인들이 부러워하여 신학교에 너나할 것 없이 들어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풍요 속에서 무너진 21세기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권위의 추락이고 상실, 그 자체였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신학교육의 현장이 정화되지 않고 교회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회자의 자질도 떨어졌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목회자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또한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희망이었다.
그 당시 강원룡 목사의 강연을 듣기 위해 YMCA 강당 안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찼었다. 젊은이들은 사회와 정치계를 향한 예언자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 목회자의 권위에 고개 숙였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신학적으로는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목회에 대한 소명의식이 분명하게 있었다. 비록 학벌은 없어도 강대상 밑에서 하루 2~3시간씩 기도하며 영성훈련에 몰입되어 영성이 살아 움직였다.
△지금 한국교회는 어떤가?
맘몬이즘을 말하지 않더라도 목회자는 고급승용차를 타야만이 권위를 내세울 수 있고 1천여 명 성도가 모여 대형교회를 이룬 목회를 해야 성공한 목회자로 자처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더구나 웬만한 외국대학 박사학위 하나쯤 지닌 채, 노회장은 물론, 총회장 등 온갖 감투를 다 쓰기를 희망하는 오늘날의 목회자는 세속사회에서의 명예욕이나 다를 바 없다.
반면, 기름끼 번드러한 목회자들은 사회, 교계, 명예에 길들여지다 보니 교회 안에서의 영성과 겸손은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세상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던 당시의 목회자들은 오직 선교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갖고 복음을 들고 전국 방방곡곡에 들어가 복음의 불을 지폈다.
1990년대부터 성장이 멈추었다. 그리고 교회는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교회와 교단은 숫자를 부풀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앞을 다투어 함양 미달의 목회자를 양성하는데 앞장섰다.
이 말은 허수가 빠져나가면서 한국교회를 20년 가까이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소금의 역할도 상실하고 교회는 빛을 잃고 방황하며 세상 매스컴의 비난의 소재거리가 되고 말았다. 더 이상 세상 사람과 교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종교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것이다.
△부산 교계 A교회의 경우
비슷한 예로, 부산 교계에서, 특히 서부권에서 가장 잘 나가던 A교회가 서서히 쇠퇴해 가기 시작했다. 30년간 전임 원로목사는 그래도 설교는 죽을 쒀도 카리스마가 있어 늘 교인이 주일날 안보이면 전화나, 직접 찾아가 심방하는데 게으르지 않아 교인이 1천 2백 명까지 늘었다.
원로목사가 은퇴하고 후임자로 들어 온 엘리트라고 하는 서울권의 큰 교회 목회자 밑에서 부목사로 있다가 새 담임목사로 온 젊은 50대 목사는 전임목사보다 더 하게 죽을 쑤고 있으니 중직자들은 한숨뿐이었다. 설교시간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아깝고 의로운 죽음으로 호도하고 추모하는 설교를 하는 것은 보통이며 사회주의적 사고를 가진 터인지 몰라도 좌파적인 설교에 교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무장로와 원로장로들 연명으로 “더 이상 설교를 듣고 싶지 않고 1200여명 교인이 4~500명까지 줄어들었으니 제발 다른 임지를 택해 달라”며 1년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뭘 잘못했느냐? 노회가 세운 위임목사를 나가라니 말도 안 된다”면서 버티고 있으며 “더 열심히 목회하겠다. 안 되면 스스로 나갈 테니 좀 더 기다려 달라”면서 장로들의 요청을 거절 했다.
급기야 시무장로들은 더 이상 참고 기다릴 수 없으니 권고 사임을 위한 노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시무장로 절대다수가 다른 임지를 택해 달라면서 시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당회에 여러 차례 말을 했다. 나가는 대안까지 제시했다. 외국유학, 신학교석좌교수자리, 아니면 빅딜(교환)까지 했지만 모두 거절하며 막무가내로 버티고 있는 상황을 보고 결국 노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단계까지 온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목회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틈을 이용해 목회자가 개척한 교회를 교인 머리수까지 계산해서 교회당 매매를 하는 사태를 낳고 또한 자신이 세운 교회를 해외선교사로 가는 이유로 후임자 또는 제 3자에게 거액을 요구하는 폐단이 생기는 자리값 흥정이 오고가는 지경까지 오게 된 오늘날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S)

2011.09.10
지난 기사를 보실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110년 전, 항구 서쪽에 복음으로 세워진 부산 항서교회



-암울했던 시대에 복음의 빛으로 세워진 교회
-한국전쟁, 피난민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
-‘학사교회’라고 불리던 교회
-지역사회를 품고 다음 세대와 함께 할 ....

 

2015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 준비위원장 이성구 목사



Q 기존 ‘부활절연합예배’라는 이름에서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A 기독교 최대 명절은 부활절입니다. 그런데 ....

 

삼일교회 성도가 공개한 송태근 목사 청빙 일화 ‘주목’

▲송태근 목사가 삼일교회 청빙을 받아 부임하던 시기, 강남교회가 보여준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새삼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진 삼일교회)


삼일교회를 다니는 한 성도가 3년 전 송태근 담임목사의 청빙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시기 강남교회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