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겉 문둥이지만 나는 속 문둥이입니다



“당신들은 겉 문둥이지만 나는 속 문둥이입니다.” 이 말은 6·25사변이 끝나고 고려신학교에 다닐 때 어느 여름 오후 친구와 함께 부산 오륙도를 보러 남구 용호동 음성 나환자촌(한센 병자 촌)에 사는 믿음의 형제를 만날 때, 신학생 하병국 전도사가 자신도 모르게 그들에게 던진 말이다.
그 말은 일개의 신학생이 한 말이 아니고, 성령에 의한 고백임을 5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고백한 하병국 목사는 그 이후 그들의 초청으로 그 마을에 들어가 용호교회 감달천 장로의 청빙으로 11년간을 사역하며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간섭하신 은혜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의 진솔한 고백은 가슴에 와 닿았다. 눌린 자, 소외된 자를 돕는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다. 그 후 삼일교회를 개척한 한상동 목사께서 그를 미국에 유학을 보냈던 것도 하나님의 예정하신 섭리라 여겨진다고 신앙 고백을 했다.
금년 1월경 우연히도 하 목사의 둘째아들 하형록 목사(미국 펜실베니아 갈보리비전교회 담임)로부터 작년 연말에 돌아가신 아버지 하병국 목사의 생의 일대기 자서전격인 “더 큰 항해를 꿈꾸며”라는 한권의 책을 받았다.
왜 하필 살아생전 마감하는 즈음에 아버지 하 목사의 자서전을 쓰게 하셨을까? 그것은 아비인 하 목사의 인생여정에서 그의 일생을 이끌어 주신 하나님 앞에 숨김없는 고백을 통해 아들에게 주는 ‘신앙적 유산’으로 준 선물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하 목사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걸어온 인생 삶을 솔직하고 부끄러운 자신을 발가벗겨 새로운 제2, 더 큰 본향으로 향하는 항해를 하는 더 큰 뜻이 담겨있어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이번 연휴(설 명절)동안을 의미 있게 보내게 되었다.
그는 한상동 목사의 도움으로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이스턴 침례신학교에서 공부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위해 택시운전을 하고, 사무실 청소를 하고, 그야말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 속에서도 공부하면서 미국 클레비돈 장로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다가 마침내 이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필라델피아 근교에 있는 렌스데일(Lanasdale) 한인선교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섬겼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아버지처럼 존경하던 한상동 목사님이 섬기던 부산삼일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청빙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오늘날 내가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한상동 목사의 도움으로 가능한 것으로 여겨 그에게 진 빚을 갚아야겠다”는 뜻에서 부산삼일교회 담임으로 부임했다.
△ 삼일교회 7년간 목회길…좋은 경험
부산삼일교회에 목회한다는 것은 과거 한상동 목사가 신앙의 터를 닦아놓았던 보수적 기반에 젖어있던 교우의 신앙생활과 하 목사가 청년·장년기를 보낸 자신에게는 퍽 이질적인 신앙의 갈등이 이교회에 분출되었다.
△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설립에 기여
1980년도 5·18 광주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시절, 국가보위비상대책위가 발족되어 입법 행정권을 장악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그 시절, 어느 날 고신의료원 원장 박영훈 장로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즉시 부산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그와는 친한 친구 사이인지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부탁의 내용은 부산에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은 인제병원에서 제출한 의과대학의 설립인가는 나왔는데, 그보다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고 장기려 박사가 설립한 고신의료원이 제출한 의과대학 설립인가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때 하목사는 고신의료원 해외부장이란 직책을 맡고 있었기에, 와달라는 것이었다. 국보위원 중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서동렬 장군을 찾았다. 겨우 면회가 허용이 된 하 목사는 서 장군을 만나게 되었다.
“대구 다부동 지역에서 내가 속해있던 학도병 중대는 밤이 되면 공격해 오는 적군과 백병전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인민군들이 숨어서 밤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진지에 저 쌕새기가 나타나 숨어있는 지역을 강타했습니다. 그 쌕새기가 바로 서 장군이 타고 있었던 비행기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좀 무리하게 장군님을 찾아 온 것은 부산 땅에 온지 몇 달도 안 된 인제병원이 신청한 의과대학 설립 청원서는 허가가 바로 나고, 6·25부터 수많은 피난민을 치료해준 고신의료원이 신청한 의과대학 설립 청원이 보류가 됐습니다.” 나의 설명을 다 듣고 서 장군은 이렇게 해서 “이제 미국으로 안심하고 가셔도 됩니다. 국보위와 만남이 있는데 의과대학 일은 그곳에서 의논해서 잘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답변을 해주었다.
그래서 오늘의 고신의과대학의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었다.

(S)

201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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