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장로의 삶과 52년 의사생활 청산



1950년 6·25가 터진 시기에, 서울대 의대를 졸업할 때 혈기왕성한 24세 젊은 청년이었다. 6·25 군 입대를 해서, 8년(1950~1958년)간 군의관으로 헌신한 이래, 52년간 의사생활을 청산한 원로장로이자 원로의사, 원로 문필가로 이름을 떨친 박영희 장로(부산영락교회 원로, 80세)가 2010년 12월부로 부산시 중구 부평동 소재 부산내과의원 원장으로서 마침표를 찍고, 조용한 황혼생활을 시작했다. 박 장로와 어느 날 정오 점심을 하게 되었다.
△ 의사생활을 접은 후 요즘 생활은 어떻습니까?
“매우 시원하다고 하면 건방진 말이고 대단히 섭섭하고 안타까운 말년을 보내기엔 너무 적적합니다. 수족은 건강하나 그래도 한번 뇌출혈로 쓰러진 후 말이 둔하여 상대방과 대화하기도 불편합니다. 그래서 이런 불편을 계속할 수 없어 의사생활을 접기로 했습니다”라고 띄엄띄엄 알아듣기 힘든 말을 이어나갔다.
△ 그의 부친도 의사
북한 평북 차련관교회 장로이자 내과의원원장인 부친은 6·25시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군에 의해 순교한 분이다.
당시 평양 산정현교회(주기철 목사 시무)에서 청년회회장인 고 유기선 장로를 도와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펼쳤던 신앙인이었다.
서울영락교회 대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 서울의대(당시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해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교회생활에 충실했다.
졸업을 하자마자 6·25가 나서, 53년 7월 6사단 7연대 의무중대장으로 중부전선에서 전투 중 부상을 입었다. 그때 무공훈장을 받았다. 제대 후 부산 제3육군병원 병리시험과장으로 3년간 근무하는 가운데, 한경직 목사가 피난 시 개척한 부산영락교회로 출석한 이후 1962년 장로피택을 받기까지 중·고등부 부장, 평신도회창립회장, 기획위원장, 부산영락교회 『사김지』, 『부산영락』지 등 월간·계간을 위한 편집을 맡았다.
그 당시만도 교회안에 열린 마인드로 교회제직회 개편, 강화운동, 열린 토론의 장, 신바람 나는 제직회, 전 제직간부화운동, 교회행정에 대한 평신도운동을 전개하는데 앞장서왔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부산교계에 기독교문화운동을 펼칠 목적으로 ‘부산기독교문화회’를 창립하여 부산교계에 괄목할만한 기독교문화운동을 했다. 신앙강좌, 특별강연회, 전국주보전시회, 회지발간, 화요강좌 등 숨은 평신도 운동을 통해 깨어있는 평신도상을 구현하는데 노력해왔다. 박 장로와 필자는 한때 부산교계에 ‘대화의 광장’이란 임의단체를 만들어 월 1회 모임을 갖고, 의식 있는 교회장로·집사들로 하여금 오늘날 현대교회의 모순과 정화운동을 펼치면서 교계목사로부터 미움을 사기도 했다. 박 장로는 이 대화의 광장이 발전하여 부산기독교문화회를 창립케 하며 뜻있는 인사(함석헌, 김동길, 김광일 변호사, 한완상 박사) 등을 초청, 강연회를 열기도 하고, ‘세월이 남기고 간 자리’ “한국교회 내일을 위하여”등 수상집을 몇 차례 발행하였고, 수필문단에 등단(1992), 2002년에는 장로문학상을 수상, 2007년에는 크리스챤21세기포럼에서 수여하는 제1회 문화대상(상금 1천만 원)을 받기도 했다.
△ 박 장로의 교계활동
그는 글쓰기, 토론하기, 그리고 기독교정신으로 기존교회의 악습과 전통을 깨는데 일익을 하는 분으로, 너무 앞서간다는 세간의 평을 받고 있었지만, 교계의 정치는 일절하지 않고 평신도들을 깨우치는데 글로서, 강좌로서 의식을 바꾸는데 헌신을 해왔다. 현대판 마틴루터 처럼 우리 주변에 존경하는 한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1960년대부터 부산기독의사회를 창립하여 장기려 박사를 도와 김동수, 송윤구 장로들과 더불어 서구 감천동 태극로촌을 중심으로 결핵퇴치를, 기독사회관을 통해 ‘장미회’를 만들어 간질 환자를 매주 치료하는데 헌신했다.
한때는 이광혁 김형우 장로들과 함께 기드온 부산캠프를 만들어 성경보급에 힘썼으며, 부산YMCA 이사로 활동하면서 레이멘운동을 확산시켰다.
그는 이런 저변운동인 인간생명 살리는데 관심이 있지 감투욕이나 명예욕은 전혀 없는 순수한 크리스천 의사로서, 52년간을 봉사하고 뒤안길로 물러섰던 이 시대의 참신한 교계어른으로 세월의 흔적을 남겼다.
지금은 평소 못다한 남편의 구실을 다하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가 치매로 고생하고 있어 휠체어를 태워 경치좋고 공기좋은 곳을 다니며 헌신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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