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계 연합운동의 주역 [할렐루야장로]-신주복장로



「복 주신 장로」 「할렐루야 장로」 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분이 있다. 부산교계에서 웬만한 분들이 이 분을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알려 진 사람, 바로 신주복 장로(당64세)다.
일찍이 할머니가 예수를 믿어 그 집안이 모두 교회로 나왔다는 곳이 김해상동교회를 개척한 할머니 어머니 신장로집안 그리고 그의 아들 강도사 신현후씨 곧 자녀가 태동되면 5대째 신앙의 집안이 되는 뿌리깊은 신앙의 유산이 이어오고 있다.
늘 가난한 이들이나 불쌍한 이웃들에게 도와주는 것은 물론, 손님 접대하는 것이 습관화된 신장로는 때로는 불의와 부정이 난무하는 곳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의파로 교단에 알려졌다. 그래서 때로는 개혁파인사로 소문나 있지만 그의 신앙은 순수 고려파 보수다.
교단내 장로부총회장직까지 역임한 그는 50대 후반에 들어서 브니엘신학교를 나와 평신도로서 신학을 배웠다.
어머니께서 아들 신장로에게는 6남매중 막내라서 그런지 아끼고 사랑하는 요셉과 같은 인물로 애지중지한 턱에 “앞으로 목사가 되어라” 고 당부한 어머니의 유언이 늦게야 이뤄 질 수있을 것인지 기도하고 있다.
약관 나이 47세때 부산서면교회 고 김진호장로를 친형님같이 늘 따라 다니며 보수교단 청장년 협의회, 전국CE로 활동하면서 참모 역할내지 재정적 후원자로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 신주복장로.
그래서 김진호 장로가 회장으로 경험했던 부산기독장로 총연합회 회장, 전국CE, 보수교단청, 장년 협의회장을 역임한 노하우가 있어 양인평장로가 2000년초 부산고등법원장을 부임한 후부터 마치 바울이 바나바를 데리고 전도 여행한 것 같이 양인평장로가 부산에 부임한 이후 부산 성시화운동본부에 불을 지폈던 방화자와 함께 신주복장로를 대동하고 사역을 한 가운데 부산기독기관장회 부산 홀리클럽, 부산아가페 기독교도소, 세진회부산지회 창립등 초교파 운동에는 양인평 장로와 함께 신주복 장로는 바나바와 같은 역할을 했다.
필자와 신장로는 한때 크리스챤신문 부산지사장을 약10년 넘게 언론에 발을 딛고 함게 문서선교에 활동을 했다. 고 김광일 변호사를 부산기독언론인협회 고문 변호사로 두고 교계 이모저모 활동을 하면서 러시아도 기독언론인 회원사들이 선교여행도 다녀왔다.
어느날 회원사 회원들이 경남 합천에 들렀는데 그때 마침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가가 방화가 나서 방화 현장을 취재한 적이 추억에 남았다.
신장로는 어려운 이웃이나 동료를 보면 그냥 있지를 못하는 성미 때문에 하도 물질을 남에게 대접하거나 기부를 잘하니까 집에서 사모가 돈 주머니를 쥐고 안방마님의 허락없이 유출 못하도록 한 일화도 유명하다. 때로는 40일 금식기도로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신장로의 영은 맑아 그를 나쁘게 인식하거나 욕하는 사람은 들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선행을 즐겨 해 왔다.
그래서 붙은 닉-네임이 “복 주신 장로“라고, 아픈 분이 있으면 기도하고 기쁜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주는 정다운 이웃 신주복 장로를 향하여 “선한 사마리아인 장로“로 애칭해 왔다.
생각컨대 교단이 직영하는 고려학원이 관선이사회로 고통을 받게 되자 자신의 바로 누나의 자녀 자신에게는 외조카 이봉수 장로가 김해 봉화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으로 청와대 농촌 수석자리에 있는 그의 외조카를 통해 교육부에 설득하여 관선이사에서 정이사로 전환하는데 숨은 공로자로 알려져 있다. 앞에 그의 공로가 나타나기를 꺼려하기에 자신의 선행은 들추어 나타내지 않을 뿐이고 하나님만이 주시는 상급이 가장 큰 상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부산교계에 신주복 장로만큼 초교파적으로 연합운동에 복음을 위해 애쓰신 분은 둘째라면 서러워 할 정도다.
과연 신장로 만큼 묵묵히 자신의 맡은 일을 중실히 해 낸 분은 드물 정도로 오로지 하나님 복음 사역을 최고로 여겨 맡아 수고 한 분은 드물정도로 손꼽힌 분이다.
남에게 모든 주연을 맡기고 자신은 조연으로만 족하다는 신장로는 “하나님만 기뻐하시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미물같은 존재입니다. 영광은 하나님께 돌릴 뿐입니다“라고 겸손하게 말을 했다. 때로는 동료장로가 부채 때문에 자살을 하는 그런 어려운 고통의 터널을 견디면서 교회를 말없이 섬기며 살아온 그에게는 이젠 머리카락이 반백발이 희역희역 바람에 날리는 듯 그의 연륜도 늙은이,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될 날도 멀지 않게 되는 그의 얼굴에 주름살이 보이고 있다.
세월은 못 속이나 주님의 사역은 주님 부르실 그날까지 일하다가 할렐루야로 소리치며 주님곁을 가겠노라고 그의 의지는 여전했다.
(S)

2010.11.13
지난 기사를 보실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110년 전, 항구 서쪽에 복음으로 세워진 부산 항서교회



-암울했던 시대에 복음의 빛으로 세워진 교회
-한국전쟁, 피난민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
-‘학사교회’라고 불리던 교회
-지역사회를 품고 다음 세대와 함께 할 ....

 

2015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 준비위원장 이성구 목사



Q 기존 ‘부활절연합예배’라는 이름에서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A 기독교 최대 명절은 부활절입니다. 그런데 ....

 

삼일교회 성도가 공개한 송태근 목사 청빙 일화 ‘주목’

▲송태근 목사가 삼일교회 청빙을 받아 부임하던 시기, 강남교회가 보여준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새삼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진 삼일교회)


삼일교회를 다니는 한 성도가 3년 전 송태근 담임목사의 청빙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시기 강남교회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