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과 욕망 사이에서
·본문/빌립보서 3장 10-14절
얼마 전 은퇴하신 장로님들의 모임에서 제게 특강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런데 회장되시는 장로님께서 주제를 정해 주셨는데, 그 주제는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였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이런 주제를 정한 이유는 비록 은퇴하여 나이 들었지만, 위축되어 살지 말고,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꿈을 꾸는 여생을 살았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강의를 부탁받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아마 이런 내용일 것입니다. <늙었다고 포기하지 말자.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하지 않는가? 이미 우리 사회는 고령화 사회가 되었고, 아직 수십 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일을 꿈꾸자. 젊게 살자. 나이 들수록 더 젊은이 패션으로 꾸미자. 향수도 뿌리고, 멋도 내자. 그리고 천천히 걷지 말고, 달려가자. 우리 모두 노인의 힘을 보여주자. 파이팅!>
그리고 이런 강의를 할 때 본문 성경으로 적합한 말씀은 무엇일까요? 적합한 대표적인 몇 구절이 있습니다. 백세나 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이야기, 팔십세나 된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이야기, 갈렙이 팔십 오세에 전쟁을 한 이야기, 그리고 그 분들이 정해 주신 늙은이는 꿈을 꾼다는 요엘서의 말씀 등입니다.
오늘의 본문도 이런 강의에 적합해 보입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도 우리 모두가 존경해마지 않는 열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이 편지를 쓸 때 바울은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가슴은 아직 열정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잡은 줄로 여기지 않고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열정입니까? 나이 들어도 바울처럼 하자고 말한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고심했습니다. 인생에 대한 열정에 대해 말씀드려야 하는데, 문제는 그 열정의 정체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무엇을 향한 열정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잘못된 열정은 오히려 노후를 추하게 만드는 노욕이 될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결코 노욕으로 비춰지지 않을 열정, 참된 존경을 가져올 꿈은 무엇일까요?
저는 열정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얻고 이루고 쟁취하기 위한 열정>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기 위한 열정>입니다. 전자는 젊은이들에게 익숙합니다. 그러나 후자는 인생을 통해 산전수전을 다 겪으신 노인들에게 적합합니다.
본문에서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바울의 열정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의 열정은 결코 노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과 명예를 위해 얻고자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은 10절에 있듯이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함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에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욕망을 위해 달려간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내려놓기 위해, 그리스도처럼 죽기 위해, 포기를 배우기 위해, 예수님을 닮기 위해 달려가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욕망이 아니라, 진정한 비전이었습니다.
늘 우리는 비전과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합니다. 비전이 조금만 잘못되면 추한 욕망이 됩니다. 언제나 비전을 비전으로 지켜나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올바른 주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 가슴에 있는 것이 비전인지, 욕망인지 들여다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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